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나바라는 상파뉴 가문이랑 통혼한 이후 보면 프랑스와 연결이 되고 후아나 1세이후는 계속해서 프랑스 왕가의 분가들이랑 연결되는것같네요 -0-;;;
....에스파냐가 아니라 프랑스에 넣어야 했던 건가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24) 후아나 2세 : 두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2세
에브뢰 백작부인
Joan II
Jeanne;
(28 January 1312 – 6 October 1349)
생드니에 있는 후아나2세의 무덤 조상
이제 나바라에서는 후아나를 여왕으로 인정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필리프는 원치 않았습니다. 비록 후아나 역시 프랑스에서 자라난 외국인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바라에서 여왕으로 인정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필리프가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안그래도 불만이었던 프랑스의 통치에서 겨우 벗어난 나바라에서 다시 프랑스의 통치를 받는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일듯합니다.
하지만 필리프는 후아나의 남편으로 통치 권리를 포기하려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린도서에 나오는 "여성의 머리는 남자다"라는 구절을 언급하면서 후아나의 남편으로 자신의 통치 권리를 요구하게 됩니다. 1329년 후아나와 필리프는 이제 나바라로 왔으며 후아나는 그녀의 권리로 나바라의 통치자로 대관했으며 그녀의 남편에게도 자신에게 하는 같은 충성을 맹세하게 합니다. 결국 나바라에서는 후아나와 필리프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둘다 외국인임을 인식했으며 둘의 후계자가 21살이 될때 둘다 모두 퇴위하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기로 합의합니다.
필리프 되브레
나바라의 펠리페 3세
후아나 2세의남편
후아나와 필리프(펠리페)는 이제 공동 통치자로 나바라를 통치합니다. 아마도 둘은 정치적 파트너로 잘 어울렸으며 공동의 이름으로 여러가지 일들을 합니다. 하지만 남성이었던 펠리페가 후아나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는데 이를테면 그가 독자적으로 서명한 문서가 후아나가 독자적으로 서명한 문서보다 훨씬더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아내보다 더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했던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것입니다.
후아나와 펠리페는 나바라에서 성공적인 군주이긴 했지만 나바라에 있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둘은 나바라 왕국 외에도 프랑스에 영지가 있었기에 프랑스 내 영지에 대한 통치문제도 있었죠. 게다가 둘다 프랑스 인으로 관습과 언어가 맞지 않았기에 이것 역시 둘이 나바라를 떠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둘은 대리인을 통해 통치행위를 계속했었지만 둘의 통치에 대해서 당대에 호의적인 평가였다고 합니다.
펠리페는 외교적 문제로 다시 나바라로 돌아간적이 있었지만 후아나는 남편과 동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6세에게 프랑스쪽 영지의 봉신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필리페 3세
1343년 남편인 펠리페가 죽자 후아나는 단독 통치자가 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대리인을 통해서 통치했었지만 그녀는 이전의 대리인은 교체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대리인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편과의 의견차이로 교체하지 못했었던 이를 그녀가 단독으로 통치하자 바꾼것일수도 있을것입니다.
후아나는 나바라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방문하지는 못합니다. 왜냐면 100년전쟁이 일어났고 그녀와 그녀 가문의 프랑스쪽 영지가 침공당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사촌인 에드워드 3세가 아닌 필리프 6세를 지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필리프 6세는 군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국 후아나의 프랑스 영지는 잉글랜드 군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결국 후아나는 잉글랜드쪽과 협상에서 자신의 영지를 잉글랜드 군이 지나가도록 허락하고 필리프 6세의 군대가 주둔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기도 합니다.
후아나는 1349년 흑사병으로 사망했고 생드니에 묻히게 됩니다. 그녀의 심장은 파리로 보내져서 남편의 곁에 묻혔다고 합니다.
후아나와 필리프는 거의 떨어져 지내본적이 없으며 공동 통치자로 잘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땠는지는 알수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둘이 거의 떨어져 지내지 않았으며 자녀들도 많이 낳았던것으로 봐서 둘의 관계가 괜찮았을것이라고 추정할수 있을듯합니다.
후아나와 필리프 사이에서 네명의 아들과 다섯명의 딸을 낳았는데 이중 아들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
후아나2세의 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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