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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23) 후아나 2세 (첫번째)

엘아라 2020. 3.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나바라 다하고 아라곤하고나면 공포의 카스티야 남습니다. ㅠ.ㅠ


나바라의 인판타들...(23) 후아나 2세 (첫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2세

에브뢰 백작부인

Joan II 

Jeanne

(28 January 1312 – 6 October 1349)



프랑스 식으로 "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후아나 2세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10세와 그의 첫번째 아내인 부르고뉴의 마르거리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이름은 할머니인 나바라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였던 후아나 1세의 이름을 딴 것일듯합니다.



후아나의 아버지 프랑스의 루이 10세



후아나 2세의 삶은 어린시절부터 매우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매우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결혼생활은 매우 불행하게 끝나게 됩니다. 그녀가 2살이었던 1314년 그녀의 어머니인 마르거리트는 물론 숙모들인 쟌과 블랑쉬가 모두 간통죄로 잡혀가게 됩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인 마르거리트와 숙모였던 블랑쉬의 간통은 거의 확실한 것이었죠. 이런 상황은 후아나에게도 매우 애매하게 됩니다.


후아나의 어머니가 부정행위가 인정이 되어서 감금당하게 되자 후아나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죠. 비록 아버지인 루이 10세는 부정한 아내를 감금했지만 딸인 후아나는 자신의 적자로 인정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매우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그녀의 출생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었습니다.


후아나의 어머니 부르고뉴의 마르거리트의 씰



사실 후아나의 아버지인 루이 10세가 오래살고 또 남동생들이 많이 태어났다면 후아나의 삶도 그다지 힘든것이 아닐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루이 10세는 1316년 사망했으며 유복자로 태어난 남동생마저 5일만에 사망하면서 후아나의 처지는 더 애매해지게 됩니다.


후아나의 외삼촌이었던 부르고뉴 공작 오도 4세는 조카의 지위에 대해 협상하기 위해 파리로 오게 됩니다. 부르고뉴 측에서는 당연히 적어도 나바라와 상파뉴등은 조카인 후아나가 이어받아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죠. 이에 필리프 5세는 오도 4세와 협상을 진행하게 됩니다. 필리프 5세는 나바라와 상파뉴의 영지를 인정받는 대신 자신의 장녀인 쟌을 오도 4세와 결혼시키면서 쟌이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을 부르고뉴 백작령등을 혼수로 보내기로 합의를 봅니다. 또 필리프 5세는 후아나를 친척이었던 필리프 드 뢰(필리프 3세의 아들인 루이 드 뢰의 아들로 필리프 5세의 사촌)과 결혼시키기로 했고 혼수를 15000리브르를 지급하기로 했고 이를 그가 대신 지급해주는 명목으로 나바라를 제외한 프랑스쪽 영지를 자신이 갖는것으로 합의보게 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5세, 

후아나의 숙부


이것은 사실상 고아가 된 후아나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기도 했었지만 그녀를 위해 나서줄 유일한 세력이었던 외가가 이미 필리프 5세와 합의를 봤기에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후아나는 1318년 필리프 드 뢰와 결혼했으며 이후 후아나는 필리프 3세의 왕비였던 브라반트의 마리에게 보내져서 성장하게 됩니다. 브라반트의 마리는 후아나의 남편인 필리프 드 뢰의 친할머니이자 후아나의 새 증조할머니가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둘은 같은 곳에서 살았지만 여섯살 차이 나는 둘이 함께 성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324년 결혼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3세와 브라반트의 마리의 결혼식

(필리프 3세는 후아나의 증조할아버지이자 필리프 드 뢰의 할아버지였습니다만 후아나는 필피프 3세의 첫번째 아내의 후손이고, 필리프 드 뢰는 두번째 아내의 후손입니다.)



아마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바라에서는 매우 불만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미 프랑스의 통치에 대해서 불만이 커져가던 시기였기에 필리프 5세가 정당한 여왕인 후아나의 권리를 뺏은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커져갔었죠. 그리고 1322년 필리프 5세 역시 남성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왕위는 다시 필리프 5세의 동생인 샤를 4세에게 돌아가게 되고 그 역시 형처럼 나바라와 상파뉴등에 대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합니다. 그리고 나바라에서의 불만은 더해지게 됩니다.



샤를 4세의 즉위식

...솔직히 위의 필리프 5세 즉위식 미니어쳐에 사람 몇명 더 그려넣은 느낌입니다 =-=



1328년 샤를 4세 마저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프랑스 왕위는 혈통상 나바라 왕위와 무관한 필리프 드 발루아(필리프 6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필리프 6세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정당할수도 있었지만 나바라나 상파뉴를 계승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필리프 6세는 후아나와 그녀의 남편인 필리프를 나바라의 통치자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상파뉴와 브리 대신에 앙굴렘등의 지역을 맞교환 방식으로 제공했었다고 합니다. 

 

필리프 6세와 그의 아내인 부르고뉴의 잔의 대관식

...비슷한 그림 하는 김에 다 넣어봣습니다 =-=

(같은 사람이 그렸나봐요.)


그리고 1328년 5월 나바라에서 후아나를 정식 왕위계승자로 인정하면서 이제 후아나는 나바라의 여왕 후아나 2세가 되고 그녀의 남편인 필리프는 펠리페 3세(필피페 3세)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