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좀만 더 하면 카롤링거 왕가 합니다만...ㅠ.ㅠ
진짜 머리 깨지겠습니다. -0-;;;
프랑스의 왕비들...(35)클로틸드와 도다 : 테우데리크 3세의 왕비
클로틸드와 도다
Clotilde (actually Chrothildis ) and Doda
테우데리크 3세의 왕비로 알려진 여성은 클로틸드 또는 도다라는 이름의 여성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기록에 따라서 클로틸드와 도다를 같은 여성으로 보거나 또는 둘이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한사람으로 보는 경우는 그녀가 아우스트리아의 핵심 귀족중 한명이었던 안세기셀Ansegisel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두사람으로 보는 의견은 테우데리크 3세의 어머니가 다른 자녀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어머니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당대에 많은 귀족여성들이 이름이 잘 알려져있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기록이 모호하기 때문일듯합니다. 게다가 테우데리크 3세 역시 일부다처제로 많은 아내들이 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테우데리크 3세
후대 그림
일반적으로 도다 또는 클로틸다 등으로 알려진 클로틸드는 안세기셀의 딸이었습니다. 안세기셀은 메츠의 주교로 후에 성인이 되는 메츠의 성 아르눌프의 막내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성 아르눌프는 중요한 귀족가문의 출신으로 수도원에 들어가기전 이미 아우스트리아 궁정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안세기셀은 이런 중요한 가문 출신이었기에 역시아 아우스트리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죠. 특히 그는 아우스트리아의 궁재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었던 란덴의 피핀(페핑)의 딸이었던 성 베가 St.Begga와 결혼했었으며 이때문에 아우스트리아시아의 국왕이 되는 킬데베르 3세는 그의 처조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네우스트라시아와 부르군트의 궁재 군데윈이 아우스트라시아를 공격했을때 그가 살해당하는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클로틸다의 남자 형재였던 피핀 2세(페핑2세)는 후에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가 되는 인물이었으며 이것으로 봐서 그녀의 가문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테우데리크 3세와 결혼한 것도 아마도 정치적인 요인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피핀 2세, 클로틸드의 남자형제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클로틸드는 691년 남편이 죽은뒤 아들인 클로비스 4세의 섭정으로 일했었습니다만 그의 아들은 4년 정도만에 사망했었습니다. 그녀 역시 아들이 죽을때쯤 죽은 듯합니다.
클로비스 4세의 뒤를 이은 킬데베르 4세(또는 3세)는 당대 자료가 애매한듯합니다. 후대 자료들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일단 그는 테우데리크 3세의 아들은 맞는데 클로비스 4세의 어머니인 클로틸드의 아들은 아닌듯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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