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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37)카롤링거 왕가

엘아라 2020. 4.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카페 가문 될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카롤링거로 접어든것만 해도 어딥니까..ㅠ.ㅠ 라는 생각중입니다. 흑


프랑스의 왕비들...(37)카롤링거 왕가 



카롤루스,카롤링구스,카롤빙기안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카롤링거Karoling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왕가는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 유럽 전역을 통치했던 가문으로 이들이 통치한 지역은 프랑크 왕국으로 현재 프랑스와 독일을 아우르는 중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었습니다.


카롤링거 왕가의 이름은 가문의 권력의 기반을 확고히 마련했던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의 이름에서 유래한것으로 가문의 이름의 뜻은 "카롤루스 집안 사람들"정도의 의미라고 합니다.



두 아들인 카를로만과 피핀에게 영지를 나눠주는 카를루스 마르텔



이 가문은 원래 피핀가문 또는 아르눌프 가문이라고 일컬어지던 아우스트라시아 귀족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카롤루스 마르텔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각각 메츠의 주교가 되는 메츠의 아르눌프와 프랑크 왕국의 궁재로 국왕을 압박했던 란덴의 피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권력을 잡게되는 시기는 바로 란덴의 피핀의 손자로 잠시 아우스트라시아의 국왕까지 되는 킬데베르 3세(킬데베르투스 아돕티푸스Childebertus Adoptivus) 때였다고 합니다. 킬데베르 3세가 몰락하면서 카롤루스 마르텔의 할아버지인 안셀기셀도 잠시 몰락하지만 그의 아들인 에르스탈의 피핀(피핀2세) 때 다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죠.


이후 피핀2세의 후계자 문제를 두고 다툼을 벌이다가 그의 아들인 카롤루스 마르텔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그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였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왕자리가 비었음에도 국왕을 내세우지 않고 비록 대리라는 이름이었지만 실질적인 국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롤루스 마르텔 사후 아들들의 권력투쟁이 이어졌으며 결국 둘째아들인 피핀(피핀 데어 크루제, 페펭 르 브레프)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으며 결국 메로빙거 왕가의 마지막 왕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국왕지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가의 공식적인 첫번째 국왕이 됩니다.



피핀 3세, 카롤링거 가문 출신의 첫 프랑크 국왕



이 가문의 최고의 시기는 아마도 첫번째 국왕이 된 피핀의 아들이었던 샤를마뉴(카롤루스1세 마그누스)시기였습니다. 그는 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었으며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의 관을 받아서 대관해서 "황제"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는 샤를마뉴



하지만 카롤링거 왕가 역시 메로빙거 왕가처럼 분할상속제도를 선택했습니다. 자식들에게 영지를 나눠주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제국을 분열시키는 것은 물론 심지어 형제나 친척들간에도 영지의 상속과 권력을 두고 다툼을 벌였던 메로빙거 왕가의 모습과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메로빙거 왕가의 영지는 그래도 카롤링거 왕가의 통치자들에 의해서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었습니다만, 카롤링거 왕가의 영지는 분할 상속이후 계속 따로 분할된채 상속되었으며 이것은 이전까지 하나의 프랑크 왕국으로 합쳐져있던 지역이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지역까지 모두 분할이 되었으며 이후 이들 지역은 독자적인 나라로 굳혀지게 되어서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샤를마뉴가 죽을때쯤의 유럽 상황


카롤링거 왕가는 샤를마뉴의 후손들이 각 지역을 분할해서 통치했으며 이때문에 다섯개의 분가들이 각각의 지역을 통치하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롬바르드 계열, 로타르 계열,아키텐 계열, 독일 계열, 프랑스 계열로 나뉘게 되죠. 그리고 이렇게 분할된 영지에서 각자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쟁을 했으며 이것은 결국 서서히 가문이 몰락해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10세기경이 되면서 카롤링거 가문의 영지 대부분은 다른 가문들의 차지가 되었으며 특히 10세기 말엽이 되면 카페 가문 출신의 로베르 2세가 프랑스쪽 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그의 아들인 위그 카페가 이후 프랑스의 왕가를 형성하는 카페 왕가의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카롤링거 왕가의 마지막 직계 남성 후손은 베르망두아 백작이었던 오도 1세로 그가 죽고 난뒤 카롤링거 왕가의 남성 후계자는 단절되었으며 그의 영지는 누이였던 아델라이드와 그녀의 후손에게로 상속되게 됩니다.



베르망두아의 여백작 아델라이드

카롤링거 왕가의 마지막 사람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