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자료도 없고 왕비 이름도 제대로 안나오고 역사도 복잡하고 궁재이야기만 나오고 이래서 그냥 쭈욱 하나로 뭉쳐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사실 이때쯤 되면 왕은 그냥 무늬만 왕이고 실권은 궁재가 몽땅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0-;;; 왕들도 지위를 얼마 유지 못하고 갈아치워지던 시기라서 왕들도 별로 없는데 왕비들까지 뭐가 있겠습니까..ㅠ.ㅠ
프랑스의 왕비들....번외편 6. 클로비스 4세 사후 카롤링거 왕가의 등장까지
테우데리크 3세가 죽은뒤 왕위는 아들인 클로비스 4세가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궁정은 그의 외삼촌으로 추정되는 궁재 피핀2세가 장악하고 있었죠. 클로비스 4세가 죽은뒤 왕위는 클로비스 4세의 형제(아마 이복형제)인 킬데베르 3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원래 넘버링에 다르면 킬데베르 4세가 맞는데 앞에 나온 킬데베르 3세는 메로빙거 가문 출신이 아니라서 역사가들이 그를 보통 넘버링에 넣지 않는 경우가 맞다고 합니다. )
궁재였던 피핀 2세는 매우 강력한 귀족이자 군인이었으며 이때문에 왕국에서 거의 국왕같은 지위를 누렸었습니다. 그렇기에 킬데베르 3세는 그저 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클로비스 4세와 궁재였던 피핀 2세
(앞쪽에 잠시 나왔던 클로비스 3세를 넘버링에 넣지 않을 경우 클로비스 3세로 표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킬데베르 3세가 죽은뒤 그의 아들인 다고베르 3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피핀 2세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고베르 3세 시절인 714년 피핀 2세가 사망하면서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피핀 2세의 손자이자 후계자인 테우도알드와 그의 지지자들은 테우도알드가 지위를 이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네우스트라시아의 귀족들은 궁재를 다시 뽑아야한다고 여겼었죠.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병약했던 다고베르 3세 역시 715년 사망합니다. 그에게는 어린 아들 테우데리크가 있었지만 네우스트라시아의 귀족들은 새로운 궁재를 원했으며 이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국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바로 수도원으로 보내졌던 킬데리크 2세의 아들이었던 40대의 킬페리크였습니다. 킬페리크는 테우데리크 3세의 조카로 부모가 암살당한뒤 숙부인 테우데리크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수도원으로 보내진 인물이었습니다.
킬페리크 2세의 즉위
13세기
결국 왕위계승문제는 애매해지게 되는데 네우스트라시아는 킬페리크 2세를 국왕으로 추대했었던 반면, 아우스트라시아의 경우 피핀 2세의 후손들간의 권력다툼이 대두되면서 왕위계승문제도 애매해지게 됩니다. 피핀 2세의 아내였던 플렉트루드는 자신의 아들이 일찍 암살당하고 자나 남편의 후계자로 어린 손자였던 테우도알드를 지목하도록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피핀 2세의 아들이었던 카를루스 마르텔의 반발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카를루스 마르텔은 플렉트루드의 아들이 아니었기에 아마도 플렉트루드는 자신의 혈연적 후손인 손자를 남편의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이 상황은 아우스트라시아 내부문제를 야기시켰고 결국 킬페리크 2세와 그의 궁재였던 라겐프리드가 아우스트라시아를 공격하는 계기가 됩니다.
여기서 카를루스 마르텔는 네우스트라시아를 물리쳤서 아우스트라시아를 장악했으며 네우스트라시아의 국왕인 킬페리크 2세가 아닌 자신쪽의 국왕으로 클로타르 4세를 즉위시키게 됩니다. 클로타르 4세는 카를루스 마르텔의 꼭두각시 국왕이었으며 재위 기간도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의 출신에 대해서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가 테우데리크 3세나 아니면 테우데리크 3세의 아들인 킬데베르 3세의 아들일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카를루스 마르텔는 세력이 점점 커졌고 결국 아우스트라시아 뿐만 아니라 전 프랑크 왕국의 궁재임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카를루스 마르텔은 클로타르 4세가 죽고 난뒤 킬페리크 2세를 전 프랑크의 국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이 그의 궁재로 권력을 잡게 되죠.
카롤루스 마르텔의 석상
킬페리크 2세가 721년 사망하고나서 카를루스 마르텔은 다고베르 3세의 아들로 역시 왕위계승에서 밀려났었던 테우데리크 4세를 국왕으로 옹립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권은 궁재에게 있었죠. 그리고 테우데리크 4세가 737년 사망하고 나자, 카를루스 마르텔은 더이상 국왕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통치하게 됩니다. 물론 스스로 국왕이라 칭하지 않았지만 국왕의 자리를 비워뒀고 이때문에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카를루스 마르텔이 실제 국왕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741년 카를루스 마르텔이 죽을때 왕국의 궁재 지위를 세아들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었습니다.
카를루스 마르텔의 세 아들인 카를로만, 피핀,그리포에게 각각의 영지를 물려주게 됩니다. 카를로만과 피핀은 첫번째 부인의 아들들이었고 그리포는 두번째 아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카를로만과 피핀이 가장 많이 상속받았으며 그리포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을 상속받게 되죠. 이때문에 그리포는 외가쪽 인물들과 함께 이복형들의 영지를 공격하려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카를로만과 피핀(피핀 데어 크루제, 페핑 르 브레프)가 아마도 권위를 위해 국왕을 내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743년 킬데리크 3세를 프랑크의 국왕으로 내세우게 되죠.
킬데리크 3세의 부모도 누군지 확실하지 않는데 그는 킬페리크 2세나 테우데리크 4세의 아들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아들들에게 영지를 나눠주는 카를루스 마르텔
745년 형인 카를로만이 수도원으로 은퇴하면서 모든 권력을 손에 넣은 피핀은 이제 국왕 자리를 원하게 되었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왕국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국왕이 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결국 751년 킬데리크 3세와 그의 아들은 머리를 깍고 수도사가 되므로써 왕위를 포기했으며 피핀은 정식으로 국왕이 되면서 카롤링거 왕가가 시작됩니다.
메로빙거 왕가의 마지막
19세기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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