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6)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일곱번째)

엘아라 2020. 3.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6)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일곱번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

"미헨"대공비

Duchess Marie of Mecklenburg-Schwerin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known as "Miechen" or "Maria Pavlovna the Elder"

(14 May 1854 – 6 September 1920)



사실 1차대전 이전에 러시아는 이미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시대와 다른 정치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비록 입헌군주제로 가긴했지만 20세기가 되었음에도 전제군주제를 표방하는 것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었죠. 게다가 누적되어온 사회의 불만 역시 폭발 직전에 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혼란을 점차 더 가중시키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1차대전이 일어나고 황제가 총사령관으로 나섰음에도 연이은 패배를 당하는 모습은 러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이었으며 결국 이것은 이전에 일어났었던 일련의 사건들과 더해져서 결국 의회가 황제의 권한을 뺏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이전에 미헨 대공비나 그 측근들은 더이상 황제가 국정을 운영할수 없다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쿠데타를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일을 실행하기 이전에 의회가 황제의 권한을 뺏은 것이었죠. 처음에는 황제와 그 아들인 알렉세이가 자신의 계승권리를 포기했었습니다. 그뒤에 황제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 역시 황위계승권리를 포기하죠. 아마 이 상황은 복잡했는데 그 다음으로 황위계승권리를 가진 사람이 바로 미헨 대공비의 아들이었던 키릴 대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더이상 군주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특히 의회는 모든 군인들에게 황제가 아닌 의회에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으며 이때 수도 방어를 담당하고 있던 키릴 대공은 제일 먼저 의회에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폭력적 상황때문에 어쩔수 없는 것이긴 했지만 황실 가족들이 보기에 키릴 대공은 반역자라고 여기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 가족들과 함께있는 미헨 대공비와 그 자녀들과 가족들



미헨 대공비는 두 아들인 보리스와 안드레이와 함께 볼셰비키의 세력이 아직 미치지 못한 캅카스(코카서스)지역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아마 러시아에서 백군과 적군이 내전을 했으며 백군이 승리한다면 아들인 키릴이 황위에 오를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황족들이 처형당했으며 이 소식은 널리 알려져있었습니다. 미헨 대공비는 아들이 황위에 오르려면 자신이 러시아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겼으며 이때문에 어쨌든 러시아 지역에서 버티려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볼셰비키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헨 대공비는 아들들과 그들의 정부들(후에 아내들)과 함께 1920년 이탈리아배를 타고 탈출하게 됩니다. 


아마 이것은 늘 강인하고 당당했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대공비에게 큰 충격이었을것입니다. 이때 유럽에서 탈출한 어머니를 만난 키릴 대공은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해서 모습이 완전히 바껴버려서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헨 대공비는 탈출한 그해 9월에 사망합니다. 



1903년 가장 무도회때의 미헨 대공비


미헨 대공비의 경우 다른 황실가족들보다 인맥도 넓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기에 중요한 보석들을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와 그녀의 아들들이 망명생활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티아라를 쓰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할머니였던 메리 왕비는 1차대전이후 망명왕족들에게서 유서깊은 보석들을 많이 샀었습니다. 그리고 이 티아라 역시 이때 미헨 대공비의 자녀들에게서 샀었습니다.



미헨 대공비의 아들인 키릴은 망명후 자신을 황위계승 요구자로 러시아의 황제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문 전체가 황태후가 생존해있을때 황위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을 깬것이어서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키릴은 황제에게서 가장 처음으로 등돌린 황족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는 정당한 계승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가문의 수장이 될만하긴했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수장에 대한 문제는 그의 아들이 애매한 가문의 여성과 결혼해서 딸만 두면서 복잡해지게 됩니다. 키릴의 손녀는 자신이 가문의 수장이라고 주장했지만 파벨1세 이후 러시아 황실은 "여성계승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키릴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아내의 신분은 통치가문출신이라기에는 좀 애매했기에 더욱더 말이 많아집니다.


덕분에 지금도 러시아 황실의 수장문제는 복잡다난합니다. ^^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