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5)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여섯번째)

엘아라 2020. 3. 1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5)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여섯번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

"미헨"대공비

Duchess Marie of Mecklenburg-Schwerin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known as "Miechen" or "Maria Pavlovna the Elder"

(14 May 1854 – 6 September 1920)



미헨 대공비가 정치적으로 점차 더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미헨과 블라디미르 대공은 자녀들의 결혼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네 자녀들과 함께 있는 블라디미르 대공 부부



먼저 장남인 키릴은 한 여인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키릴의 고종사촌이었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더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황후의 오빠였던 헤센의 대공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여성이었죠. 키릴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니콜라이 2세는 더키를 황실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대 이혼녀라는 것은 큰 흠이었으며 황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후인 알렉산드라가 자신의 오빠를 버린 더키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죠. 니콜라이 2세 역시 이런 껄끄러운 상황의 사촌을 황실에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는데다가 아내의 이런 반응에 더욱더 더키를 거부하게 됩니다. (키릴과 더키가 결혼하기 위해 황제의 허락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둘이 사촌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촌관계의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결혼을 하려면 황제의 특별허가가 필요했는데 니콜라이 2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더키와 키릴


미헨은 니콜라이 2세에게 아들이 태어나지 않고 그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이 귀천상혼하면서 키릴이 황위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간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허락받지 못한 결혼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미헨 대공비는 아들에게 더키는 그냥 정부로 남겨두고 황실에서 받아들일만한 여성과 결혼하라고 애원할정도였다고 합니다.


둘째아들인 보리스는 말도 못할 바람둥이였는데 그냥 정부들과 즐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마 귀천상혼을 한것은 아니었기에 미헨 대공비가 속은 탔겠지만 그냥 내버려둘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셋째아들인 안드레이의 경우 대놓고 마틸드 크세신스카와 연애질중이었습니다. 그와 마틸드 그리고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관계는 매우 유명했고 스캔들꺼리였습니다. 


딸인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은 원래 바덴의 막시밀리안과 약혼했었습니다. 그는 당대 딸가진 사람이 모두 사위삼고 싶어하는 왕족이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만 막시밀리안은 별 이유도 없이 옐레나와의 약혼을 깨버렸습니다. 이것은 옐레나의 평판에 큰 상처가 되는것으로 열받은 미헨 대공비는 더 좋은 혼처를 찾으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헨 대공비가 원하는 혼처(왕비이상의 혼처)를 찾을수 없었으며 결국 역시 친척이었던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와 옐레나는 결혼하게 됩니다. 물론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네 자녀와 함께 있는 미헨 대공비



특히 1905년 키릴 대공이 허락없이 더키와 결혼했고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키릴을 추방하고 지위를 모두 뺏아버립니다. 이것은 미헨과 블라디미르 대공을 격분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대공은 황제를 찾아가서 큰소리를 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04년 태어난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는 혈우병 환자였으며 결국 황위계승자가 불안했던 니콜라이 2세는 결국 미헨의 남편인 블라디미르 대공이 죽고나자 사촌인 키릴을 다시 불러들이게 됩니다.


아들이 돌아오면서 미헨은 아마도 아들이 황위계승권리에 더 가까워졌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황제의 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를 혈우병 환자였고, 황제의 동생은 귀천상혼했기에 결국 황위는 아들이 물려받을수 있게 될 것이었죠. 이에 미헨 대공비는 오래도록 거부했던 개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정교회의 수호자인 짜르가 될지도 모르는 아들을 위해서 정교회로 개종한것이었죠.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그리고 둘의 아이인 마리야 키릴로브나

니콜라이 2세는 둘의 결혼을 인정해주면서 빅토리아 멜리타(더키)에게 위대한 할머니의 이름인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쓰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사



아들이 돌아오면서 미헨의 삶과 지위는 더욱더 활발해졌을 것입니다. 비록 남편인 블라디미르 대공은 1909년 사망했지만 이제 어쩌면 아들이 황위를 이을지 몰랐으며 또 인기없는 황제와 황후와 달리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은 1차대전으로 인해 끝나게 됩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