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2)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세번째)

엘아라 2020. 2.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저는 키릴대공네 가계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미헨 대공비에 대해서도 그리 좋은 시선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생각해봤는데 뭐랄까 진짜 의지가 강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하하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42)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세번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

"미헨"대공비

Duchess Marie of Mecklenburg-Schwerin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known as "Miechen" or "Maria Pavlovna the Elder"

(14 May 1854 – 6 September 1920)



미헨과 블라디미르 대공의 결혼협상이 진행되었을때, 블라디미르 대공은 미헨에 대해서 "불쌍한 여자"라고 반응했습니다. 자신처럼 술독에 빠져사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블라디미르 대공은 이후 삶을 싹 뜯어 고치고 진지하게 미헨과의 결혼을 진행하게 됩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미헨이 정교회로 개종하는 것에 대해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결혼의 걸림돌이 될까봐 걱정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황실로 시집가는 여성들은 대부분 정교회로 개종을 했었습니다. 특히 황후의 경우 거의다 정교회로 개종했었습니다. 이것은 "정교회의 수호자"인 짜르의 아내가 정교회를 믿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짜르의 아들들과 손자들의 아내들 역시 모두 결혼할때 정교회로 개종했었죠. 하지만 미헨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완고하게 정교회로 개종하길 거부합니다. 루터파인 자신의 신앙심을 지키고 싶어했죠.


이 문제 때문에 약혼 발표와 결혼은 계속 연기 되었는데 결국 항복한 쪽은 미헨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될 알렉산드르 2세였다고 합니다. 그는 며느리가 될 미헨이 개종하지 않고 아들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할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었던 앨리스 대공비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공주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킬수 있게 된것이 옳은 일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앨리스 대공비의 두 딸이 러시아로 시집갔고 둘다 개종했군요.)


블라디미르 대공과 미헨

1874년 약혼사진



1874년 8월 24일 미헨은 러시아에서 짜르의 아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합니다. 비록 그녀는 정교회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식 이름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리라는 자신의 이름에 부명으로 "파블로브나"라는 이름을 선택하죠. 이것은 그녀가 러시아의 황제 파벨 1세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러시아에서는 "마리야 파블로브나"대공비라고 알려지게 됩니다만 개종하지 않았기에 이런 정교회식 이름보다는 그녀의 애칭인 "미헨"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됩니다.


미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때쯤 그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면서 좋아하게 됩니다. 비록 아주 아름답다고 할수는 없었지만 화려하면서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시아버지인 황제는 물론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녀를 좋아했으며 호의적이되었다고 합니다.


미헨 대공비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