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흑흑..책이 안 읽혀요..ㅠ.ㅠ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8) 잉글랜드에서
1002년 에마는 잉글랜드 국왕과 결혼했고 이제 잉글랜드에서 앨프기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녀는 바이킹 혈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의 집안은 다른 바이킹 지도자들과도 교류가 있었죠. 하지만 잉글랜드에서 그녀가 맞닥들인것은 아마도 데인인(바이킹)에 대한 적개심이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그녀를 왕비로 맞이해서 좀더 평화를 원하는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약탈등을 일삼는 데인인에 대한 적개심도 여전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에 대한 바이킹 세력의 위협은 점차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부담금과 연이은 침입으로 인해 영토를 점차 뺏기고 있는 상황이 심해지고 있었죠. 그리고 아마도 애설레드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무슨 행동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1002년 그는 에마와 결혼했고, 에마의 오빠인 노르망디 공작과 동맹을 맺으면서 데인인에 대한 전의를 다졌으며 다시 한번 맞붙어볼만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훗날 엄청난 파국을 가져올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애설레드 2세가 새겨진 은화
1002년 11월 13일 성 브라이스(St. Brice)의 축일에 애설레드는 잉글랜드 내 모든 "데인인"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사실 이 명령은 완벽히 수행될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많은 데인인들이 잉글랜드에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어떤 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데인인들로 구성된 마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명령은 이전의 바이킹에 대한 적개심에 기름을 붓는것과 다름없었으며 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성소(교회)에 피신한 이들마저 살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 살해당한 사람들중에는 바이킹의 고위 지도자나 그 가족도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스웨인의 누이인 군힐다와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스웨인이 다시 한번 잉글랜드를 침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잉글랜드 내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두고만 볼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복수도 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침공에 많은 바이킹 출신의 인근 세력들, 브르타뉴나 심지어 노르망디 조차도 이들이 항해하는 것에 항구를 내줬다고 합니다. 결국 1003년 스웨인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침공하게 됩니다. 여전히 전문 군사 집단인 데인인들에 대해서 잉글랜드는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스웨인은 다시 한번 엄청난 돈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는 왕과 성직자 귀족들의 몸값을 매겨서 돈을 지불하라고 강요했으며, 자유민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영주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노예로 끌려간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마 이때 에마도 엄청난 몸값이 매겨졌을 것입니다. 그녀는 잉글랜드의 왕비였을뿐만 아니라 임신중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스웨인
다시 한번 잉글랜드는 이렇게 엄청난 혼란을 맞게 됩니다. 스웨인은 엄청난 돈을 받고 물러났지만 다른 바이킹 세력 역시 부유하고 취약한 잉글랜드를 노리게 되고 지속적으로 침공을 받게 되죠. 잉글랜드의 취약한 방어 상황은 결국 스웨인이 잉글랜드를 점령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중세의 많은 상황처럼 아마도 에마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킹 출신인 에마는 잉글랜드의 왕비로써 무엇인가를 하려했을 것입니다. 중세시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주로 "중재"를 위한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에마도 이런 시도를 했을 것입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에마에 대한 책에 따르면 1009년 토킬Thorkell이 침공했을때 그의 마음을 돌린 사람이 바로 에마였다고 합니다. 에마의 중재에 따라 토킬은 잉글랜드에서 약탈을 중단하고 애설레드의 편에 섰다고 합니다.
갑옷을 입은 애설레드 2세가 새겨진 금화
Mancus라는 이름의 금화로 4.25g의 금으로 만들어진 금화라고 합니다.
...아마 이런 금화로 돈을 줬겠죠-0-;;;
에마는 애설레드의 전처와는 달리 자녀들을 셋 정도 밖에 낳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후대의 연대기 기록자들은 애설레드가 아내인 에마보다는 다른 첩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기록하기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대기 저자들이 일관되게 애설레드 2세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아마도 에마와 결혼한 직후 발생한 비극적 상황에 대해서 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쓰고 있는것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에마는 1003년에서 1013년 사이 애설레드 2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들인 에드워드, 앨프레드,고드지푸를 낳았습니다. 영아 사망율이 높던 시대였기에 아이가 더 있을수도 있지만 후대의 연대기 저자들의 부정적 반응으로 봐서 이 아이들이 다일수도 있기도 합니다. 아마 에마는 아이들을 당대 많은 왕가의 여성들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서 키웠을 것입니다. 그녀 스스로도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자라났었죠.
재미난 이야기는 에마가 장남인 에드워드를 수도사에게 보내서 키우게 했다는 이야기일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아들을 수도사로 만들려는 의도일경우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훗날 에마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왕위를 잇게 하려고 노력했었으며 이런 야심을 가진 그녀가 아들을 수도사로 키우려 했다는 것은 좀 모순된 부분이 있어보입니다. 아마도 그녀가 아들을 수도사로 키우려했다기 보다는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수도원에 아들을 보내서 교육을 받게 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마가 자녀들의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기도 할것입니다.
에마의 아들 에드워드 "참회왕"
계속해서 데인인들이 침공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동안 에마는 잉글랜드에서 살면서 자녀들을 낳고 키우면서 어쩌면 왕비로써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여하고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13년 에마는 더이상 잉글랜드에 머물수 없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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