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도대체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감이 잘 안오네요..ㅠ.ㅠ
책은 있지만 자료는 별로 없고 게다가 책도 덜 읽었고 완전 좌절입니다.
....-0-;;앞으로 11세기 이후만 해야겠습니다. -0-;;;;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6) 잉글랜드
에마가 잉글랜드의 국왕과 결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잉글랜드와 바이킹들간의 오랜 투쟁때문이었으며 잉글랜드가 성립되는 자체가 바이킹과의 투쟁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브리튼 섬은 로마제국의 해체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유럽 대륙과 달리 평화를 유지했었으며 이때문에 바이킹이 유럽 전역으로 진출하던 시기 매우 부유한 지방이기도 했었습니다. 브리튼 섬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으며 특히 항해술이 뛰어났던 바이킹들의 좋은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8세기말 처음으로 바이킹과 접촉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후 해안 지방의 상당부분이 바이킹에 약탈당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해안 지방에 있는 수도원들이 표적이 되었는데 접근하기가 수월했고 수도사들은 대부분 바이킹을 당해낼수 없었으며(...수도사들이 아니라도 당해내기 힘들었을것입니다.) 또 수도원에는 매우 값진 보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이킹들은 브리튼 섬을 자주 공격했으며 다른 유럽의 지역에서 그런것처럼 브리튼 섬에서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려합니다.이것은 브리튼섬에 살고 있던 앵글로-색슨 인들에게 매우 위협으로 다가왔었으며 여러작은 소왕국으로 나뉘어져있던 이들을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웨섹스 왕국을 중심으로 뭉쳤었는데 특히 바이킹에 대해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앨프러드 대왕"은 외세에 대항해서 잉글로-색슨 인들이 하나의 나라로 뭉쳐야한다고 생각했으며, 이후 앵글로-색슨인들의 나라인 "잉글랜드"가 성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앨프러드 대왕 시기의 브리튼 섬의 세력 관계
붉은 색의 표시가 데인인(바이킹)이 점령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바이킹들은 여전히 브리튼 섬을 공격했으며 잉글랜드는 지속적으로바이킹과 대적을 하던가 아니면 바이킹들을 회유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이킹과 싸움이 너무 힘들경우 잉글랜드에서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돈을 주고는 했습니다. 이것은 일명 "데인겔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바이킹들 상당수가 데인인(덴마크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붙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돈으로 회유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괜찮지만 다음에 또 공격할경우 액수가 점점 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바이킹이라고 통칭했지만 각각의 세력들이 달랐고 이들 세력들은 각각 독자적으로 행동했기에 어느 한쪽에 돈을 준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특히 에마의 남편이 되는 애설레드 언레디가 즉위할무렵 잉글랜드는 수없는 바이킹의 칭공을 받게 됩니다. 이때 잉글랜드로 진출한 바이킹들은 이전의 약탈자의 모습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군인이었으며 이들은 너무나 강력했기에 침공할때마다 다 잉글랜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을 물러나게 하기 위한 엄청난 돈을 쥐어줘야했습니다.
애설레드 2세
물론 애설레드 언레디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을 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는 바이킹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이웃의 여러 군주들과 외교관계를 맺으려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노르망디가 포함되어있었습니다. 브리튼섬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가깝다고 하더라도 잉글랜드는 브리튼섬 남쪽 지역이었으며 이때문에 이들이 습격을 하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항구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등의 지역에서는 같은 바이킹 출신의 이들에게 항구를 개방했었죠. 애설레드는 동맹을 맺어서 바이킹들이 항구를 더이상 사용할수 없게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에마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에마의 아버지가 죽고 오빠인 리샤르 2세가 공작이 되고 또 애설레드 2세의 어머니인 앨프트리스가 사망하면서였다고 합니다. 에마의 오빠인 리샤르 2세는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물론 애설레드 2세가 여전히 매우 부유했으며 독립된 왕국의 국왕이라는 점에 흡족해했다고 합니다. 여동생이 Queen이 되는 것은 가문의 지위를 한층 더 높이는것이기도 했었습니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외국인 특히 바이킹 출신의 여성이었던 에마를 왕비로 맞는것에 대해서 반발이 없지 않았었습니다. 아마도 이 중심에는 애설레드의 어머니인 앨프트리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정식으로 대관한 왕비Queen였으며,아들이 왕위에 오른뒤 며느리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여성이었죠. 하지만 이런 그녀가 사망하면서 아마도 궁정내 복잡한 문제를 애설레드 2세가 통제할수 있었기에 혼담이 진척이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전히 바이킹의 위협에 시달리던 잉글랜드와 애설레드 2세에게 노르망디는 중요한 외교적 상대였을 것이며 이런 외교를 위한 동맹의 결과로 에마는 잉글랜드의 국왕 애설레드 2세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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