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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3) 노르망디 공작들의 결혼

엘아라 2020. 1.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 매일 피말리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0-;;;

실시간 연재는 너무 힘들어요..ㅠ.ㅠ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3) 노르망디 공작들의 결혼

 

 

바이킹들은 원래 기독교를 믿지 않았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유럽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들의 가정생활에도 복잡한 상황을 낳게 됩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는 일부일처제가 정착해 있었는데, 바이킹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정치적 목적으로 맞은 신분이 높은 정식 아내와 또 약탈혼이나 주변 세력과 우호를 위해서 맞은 아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사실 정식 아내 외에는 모두 첩이라 할수 있지만 개념은 좀더 애매했습니다. 기독교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정착했기에 혼외자에 대한 상속권을 제한했었지만 바이킹 사회는 그렇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12세기 묘사된 북유럽의 신들인 오딘,토르,프레야

 

 

에마의 증조할아버지였던 롤로 역시 적어도 두명의 아내에 대해서 알려져있습니다. 그는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인 카롤루스 심플렉스(샤를 3세)의 딸이었던 기젤라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의 어머니는 롤로가 파리를 공격했을때 바이외 지역에서 사로잡아 왔다고 알려진 "포파"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프랑크의 고위 귀족 내지 왕족 출신이라고 여겨지긴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 정식 아내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롤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기독교식의 정식 아내를 맞이했지만, 바이킹식의 아내들 역시 존재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두 부류의 아내를 맞는 것은 롤로 이후의 노르망디를 통치하던 인물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로 존재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개념은 후에 에마의 조카 손자이자 잉글랜드를 정복한 윌리엄 1세가 부모가 기독교식으로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을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롤로, 에마의 증조할아버지

 

 

에마의 할아버지이자 롤로와 바이외의 포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기욤 롱게페(Longue-Épée, 윌레무스 롱가 가 스파타Willermus Longa Spata)는 아직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하기전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이미 후계자로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롤로의 다른 아들들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할듯합니다. 그리고 그는 935년 정치적 목적으로 베르망두아 백작의 딸이자 서프랑크 국왕의 외손녀였던 베르망두아의 루이트가르드Luitgarde of Vermandois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는 역시 이 정식 아내가 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욤의 후계자를 낳은 여성은 브르타뉴에서 납치해서 아내로 삼았다고 알려진 스프로타Sprota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932년 기욤의 아들인 리샤르Richard를 낳는데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욤은 매우 기뻐했으며 아들의 이름은 스스로 지어줬다고 합니다. (Richard라는 이름은 통치권을 강하게 한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아마도 이전까지 아들이 없었던 기욤이 아들을 얻게 되면서 기뻐서 지은 이름일듯합니다.) 이 리샤르가 바로 에마의 아버지였습니다.

 

 

 

노르망디의 기욤

에마의 할아버지

 

에마의 아버지인 리샤르 1세는 겨우 10살무렵 아버지 기욤이 사망하게 됩니다. 미성년자였던 그에 대해서 서프랑크의 국왕이었던 루이 4세는 그가 미성년자임을 들어서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는 노르망디에서 멀리 떨어진곳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국왕은 노르망디 공작령을 자신의 뜻대로 나눠버립니다. 하지만 리샤르는 그의 위대한 할아버지인 롤로의 후손답게 강력한 전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14살이 된 리샤르는 프랑스내 바이킹들을 규합했고 이들의 리더가 되었으며 덴마크 국왕의 지원을 받아서 서프랑크 국왕과의 전투를 해서 승리를 거뒀고 루이 4세를 포로로 잡기까지 합니다. 결국 루이 4세는 석방되기 위해서 리샤르 1세의 노르망디 공작 지위를 인정하고 노르망디로 돌아올수 있었다고 합니다. 

리샤르 1세는 어린시절 파리 백작이자 프랑크 공작인 위그 르 그랑(위그 카페의 아버지)의 딸인 파리의 에마와 약혼했었습니다. 이것은 위그 르 그랑은 이전에 리샤르 1세의 아버지인 기욤과 함께 루이 4세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었으며 동맹의 목적으로 약혼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리샤르는 960년 이 파리의 에마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죠. 에마라는이름은 아마도 이 파리의 에마의 이름을 딴것일수도 있습니다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 리샤르 1세의 아내이자 위그 카페의 누이였던 에마가 아니었습니다. 에마의 어머니 역시 바이킹 전통에 따라 리샤르의 아내가 되었던 군노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군노르는 에마 뿐만 아니라 리샤르 1세의 후계자가 되는 아들 리샤르 2세도 낳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에마의 아버지

노르망디의 리샤르 1세

 

 

롤로에서부터 에마의 아버지인 리샤르 1세와 후대에 에마의 조카였던 리샤르 3세까지도 모두 바이킹 전통에 따른 아내들이 있었으며 이 아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계승권리를 얻었었습니다. 이것은 당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 기독교 세계관념과는 좀 다른 상속법이었지만 바이킹 사회에서는 아마 익숙한 제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에마가 역시 바이킹 출신의 국왕 크누트의 아내가 되는 것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이기도 했을 듯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