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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8) 앙주백작 가문 : 잉글랜드 왕가

엘아라 2019. 12.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플랜태저넷 가문을 할 차례입니다만 현재 역사가들은 플랜태저넷 가문에 대해서 쓸때 헨리 2세부터 존왕까지는 안쥐빈스Angevins라고 구별하고 그 이후 헨리 3세 이후부터 플랜태저넷 가문이라고 쓴다고 합니다. 이것은 앙주 백작령을 상실하기 전과 후로 나뉘어서 쓰고 있는 구별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저도 그 구별을 따를까합니다.


유럽의 통치 가문들...(8) 앙주백작 가문 : 잉글랜드 왕가



플랜태저넷 가문의 문장



노르망디 가문 출신의 마지막 잉글랜드 통치자인 마틸다는 동맹과 후계자를 위해서 앙주 백작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조프리와 결혼을 합니다. "플랜태저넷"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되는 앙주 백작 조프리 5세는 앙주 백작 가문 사람답게 굉장히 호전적이며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심지어 매우 잘생기기까지 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프리는 마틸다와 결혼했을때 겨우 15살이었으며 마틸다는 그보다 11살이나 더 많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마틸다가 자신보다 어리고,신분도 더 낮은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부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알려져있었지만 어쨌든 마틸다와 조프리는 자신들이 결혼한 이유를 명확히 알았으며 둘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장남이자 외할아버지인 잉글랜드의 헨리 1세의 이름을 딴 앙리(헨리)가 바로 잉글랜드의 왕위를 얻게 되죠.


앙주 백작 조프리 5세 "플랜태저넷"


마틸다는 평생 왕위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잉글랜드 귀족들은 여성을 상위 군주로 인정하지 않으려했고 결국 전쟁에서는 성공했지만 귀족들은 그녀를 쫓아내고 그녀의 사촌인 스티븐을 국왕으로 계속 지지합니다. 마틸다는 결국 간신히 도망쳐야했었으며, 결국 스스로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장남인 헨리에게 자신의 권리를 물려주죠. 비록 아버지의 아주 잘생긴 외모를 물려받진 못했지만 앙주 백작들의 다른 성격인 호전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인물로 성장했던 헨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왕위계승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이때 잉글랜드 상황은 좀더 바뀌게 되는데 잉글랜드 귀족들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싶어합니다. 결국 스티븐이 살아있을때는 왕위에 머무르지만 죽은후 그의 후계자는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가 되도록 결정합니다.


마틸다 황후


이것은 앙주 백작인 조프리 5세와 그의 아들인 앙리가 프랑스 내에서 매우 강력한 영주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앙리는 파리에서 한 아름다운 귀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프랑스 왕비였던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였습니다. 엘레오노르는 아키텐 공작령의 상속녀로 프랑스의 국왕 루이 7세와 결혼했었습니다만 둘 사이는 나빠졌으며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왕과 헤어진후 그녀는 스스로 다른 남편감을 선택합니다. 바로 강력한 앙주 백작이었던 앙리였죠. 엘레오노르는 앙리보다 11살 더 많았지만 앙리의 부모도 같은 상황이었기에 아마도 앙리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별 거부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엄청난 아키텐 영지가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들어오는 것이 더 좋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엘레오노르 다키텐과 헨리 2세의 무덤 조상


조프리 5세가 죽고 스티븐 국왕이 죽으면서 앙주 백작 앙리는 이제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2세가 됩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공작령을 아버지로부터 앙주 백작령과 그 인근 지역을 그리고 아내인 엘레오노르로부터는 아키텐 공작령과 그 인근 지역의 통치권을 받았기에 엄청난 영지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거대한 영지를 경영할만큼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앙주제국"이라고 불리게 되는 그의 제국은 곧 붕괴됩니다. 바로 후계자문제 때문이었죠. 헨리 2세는 아내인 엘레오노르 다키텐과의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얻었을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부들과의 사이에서 수많은 자녀를 얻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살아남은 네명의 아들들은 영지 상속을 놓고 아버지와 대놓고 마찰을 빚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부자간의 갈등을 야기했으며 헨리 2세는 자신의 적자 아들들과 전쟁을 해야했었죠. 



헨리 2세와 그의 자녀들



헨리 2세가 죽은뒤 왕위를 이은 사람은 바로 리처드 1세였습니다. 리처드는 사실 프랑스쪽 특히 어머니인 엘레오노르의 아키텐 영지를 상속받을 예정이었기에 잉글랜드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잉글랜드 내정에 별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그는 다른 앙주 백작가문 출신의 사람들처럼 용맹했었으며 이것은 그가 십자군 전쟁에서 명성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내정을 파탄냈어도 잉글랜드에서는 이런 그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의 동생이자 더 "무능하다"라고 알려진 존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던 것일수도 있긴 합니다.



리처드 1세의 무덤 조상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을 떠났고 이후 한동안 유럽에서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잉글랜드와 다른 영지는 리처드 1세의 동생인 존이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리처드가 풀려나서 이 사실을 알고서는 존과 전쟁을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결국 리처드는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존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앙주 백작 지위를 가졌던 마지막 잉글랜드 국왕이었던 존은 내정은 나몰라라 했어도 인기있었던 형 리처드와는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존은 인기가 없었는데 특히 그의 행동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다른 것을 못보는듯한 행동이었고 그 결과 더 큰 손해를 얻게 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을때 프랑스쪽 영주들은 그를 군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으며, 존의 조카였던 부르타뉴의 아서(아르투아)를 상위군주로 인정했습니다. 이때문에 존은 프랑스 내 영지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전쟁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프랑스내 영지들을 잃게 되죠. 그리고 존 이후 잉글랜드 국왕들은 여전히 앙주 백작령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지만 결국 영지에 대한 통치권리를 회복하지 못했었습니다.



존 왕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