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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5)샤토됭 가문

엘아라 2019. 11.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플랜태저넛 가문 하려니까 이 가문도 선조가 참 복잡하네요 -0-;;;;


유럽의 통치 가문들...(5)샤토됭 가문 


샤토됭 가문은 앙주 백작가문 출신으로 후에 잉글랜드 왕위를 얻게 되는 헨리 2세의 선조가 되는 가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가문은 사실 선조쪽 가계가 좀 모호한 경향이 있어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샤토됭 가문을 시작한 인물은 10세기경 인물인 조프리Geoffrey(고즈프레드Gauzfred)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강력한 귀족이었던 블루아 백작 티보1세(테오발드 1세Theobald I)로부터 샤토됭 자작 지위를 얻게 됩니다. 티보 1세는 샤토됭 백작이기도 했기에 자신의 신하로 조프리에게 영지를 하사한 것이죠. 이것은 아마 조프리가 테오발드 1세와 친척관계인것도 영향이 있을듯합니다. 조프리는 프랑크 출신의 귀족으로 9세기 멘 지역을 통치했던 강력한 귀족이었던 로르공1세 Rorgon I 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오발드 1세 역시 어머니를 통해서 로르공 1세의 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조프리에게서 시작된 가문이었지만 그의 아들과 손자대의 가계가 모호하기에 좀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문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풀쿠아Fulcois(풀쿠이크Fulcuich)입니다. 그의 후손들이 각각 페르셰백작,샤토됭 자작,앙주백작 지위를 물려받기 때문이죠. 풀쿠아의 가계에 대해서는 두가지 언급이 나오는데 사실 기존에는 풀쿠아는 조프리의 아들인 휴의 사위로, 조프리의 손녀였던 멜리센드가 상속녀로 그와 결혼해서 샤토됭 가문의 영지를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져왔다는 것이죠. 여기서 풀쿠아는 모르타뉴 오 페르셰의 영주였던 에르베1세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페르셰 백작의 문장


하지만 또 다른 추정에서는 플쿠아가 조프리의 또다른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조프리의 아들이라고 언급되는 위그가 사실 실제로 아들이 아니라 같은 인물이고 조프리와 위그의 아내들이 사실은 그의 첫번째 아내 두번째 아내라는 이야기인것이죠. 그래서 여기서는 투르의 대주교인 위그는 조프리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풀쿠아는 조프리의 아들로 샤토됭 자작 지위를 상속받았다는 것입니다. 


풀쿠아에게는 두명의 아들인 조프리와 위그가 있었습니다. 


조프리 2세는 아버지로부터 샤토됭 자작령과 페르셰 백작령등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가 물려받은 영지는 그의 손자들대에 각각 영지가 나뉘어져 상속됩니다. 그리고 페르셰 백작령은 마지막 백작이었던 토마스가 1217년 후손없이 사망하면서 영지는 성직자였던 그의 숙부 기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만 사실상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2세에 의해서 장악되면서 왕실에 귀속되게 됩니다. 그리고 샤토됭 자작령은 조프리 4세에게 남성후계자가 없고 딸만 둘이 있었으며, 1250년 그가 죽은뒤 영지와 작위는 딸인 클레망스에게 돌아갔으며 이 가문의 통치는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샤토됭 자작령은 클레망스의 딸인 알릭스에게 물려지게 되고, 알릭스는 또 딸밖에 없어서 딸인 알릭스에게 물려주었으며, 이 두번째 알릭스 역시 딸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후대에서 복잡한 상속관계를 거쳐서 14세기에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가 이를 물려받게 되었으며 이후 역시 왕가에 귀속되게 됩니다.


한편 풀쿠아의 다른 아들인 위그 뒤 페르셰는 마콩 백작의 딸이었던 베아트리체 드 마콩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가티내 백작의 조프리 1세의 아내였었고, 남편이 죽은뒤 위그 뒤 페르셰와 재혼했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이미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들이 있었죠. 그리고 두번째 남편인 위그 뒤 페르셰와의 사이에서도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베아트리스의 아들이자 가티내 백작이었던 오브리가 후손없이 사망하면서 가티내 백작령은 이부동생이자 위그 뒤 페르셰의 아들이었던 조프리가 뒤를 이어서 가티내 백작 조르피 2세가 되었습니다. 


조프리 2세는 1035년경 중요한 결혼을 합니다. 바로 앙주 백작 풀크 3세의 딸이었던 에멩가르드와 결혼한 것이었죠. 그녀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두었던 조프리 2세는 결혼 10년후쯤 먼저 사망했고, 첫번째 남편이 죽은뒤 에멩가르드는 프랑스의 국왕 로베르 2세의 아들이자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로베르 1세 재혼했었습니다.


조프리 2세의 아들인 조프리 3세는 외삼촌인 앙주의 조프리 2세가 후계자없이 권력투쟁에서 밀려나서 1060년 수도사가 된뒤 사망했고, 이 앙주 백작령은 어머니의 상속 권리를 통해서 조프리 3세가 물려받게 되었으며 이후 앙주 백작령은 샤토됭 가문에게 이어지게 된것입니다.,



조프리3세, 샤토됭 가문출신의 첫 앙주 백작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