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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10) 랭카스터 가문 : 잉글랜드의 왕가

엘아라 2019. 12.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이게 가계 전체를 봐야하니까 읽어야할것이 참 많네요. ㅠㅠ

그나마 잉글랜드는 잘 아니까 금방 읽는데 다른 왕가 하면 난감할듯해요 흑


유럽의 통치 가문들...(10) 랭카스터 가문 : 잉글랜드의 왕가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문장


플랜태저넷 가문의 방계 왕가로써 랭카스터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었던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에 의해서 시작된 가문이었습니다. 곤트의 존은 랭카스터 공작의 상속녀였던 랭카스터의 블랜치(블랑쉬)와 결혼했고 후에 아내가 단독 상속녀가 되면서 랭카스터 공작의 영지 전체를 그의 후손이 상속받게 되죠. 랭카스터 공작의 아버지였던 에드워드 3세는 이 아들에게 공작 지위를 부여했었고 이것은 그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영주중 한명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랭카스터의 블랜치 역시 헨리 3세의 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은 첫번째 아내인 블랜치가 죽은뒤 카스티야의 인판타를 두번째 아내로 맞습니다. 숙부와 왕위계승권리를 다투고 있던 콘스탄스를 아내로 맞이했으며 이후 그녀와 함께 카스티야 왕위게승을 주장하게 되죠. 물론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콘스탄스와에서는 딸만 얻었는데 이 딸인 캐서린은 카스티야 왕위계승자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랭카스터 공작은 두번째 아내가 죽은뒤 오랜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했으며 그녀와의 자녀들은 랭카스터 가문의 방게 가문인 보퍼트 가문을 형성하게 됩니다.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


곤트의 존의 장남인 볼링블룩의 헨리는 당대 최고의 영주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랭카스터 공작령의 상속자였으며 당대에 "아버지라면 자랑스러워할만한 아들"이라고 평가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를 위협으로 생각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촌인 리처드 2세였죠. 리처드는 헨리를 국외로 추방해버립니다만 결국 헨리는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사촌인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스스로 국왕 헨리 4세가 됩니다.


사실 헨리 4세가 왕위에 오른 것은 정통성이나 왕위계승 권리를 따지면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는 "정복왕 전통"이 있었으며 이것은 잉글랜드 국왕에게 도전해서 승리를 거두어서 왕위를 쟁취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정복왕 윌리엄이나 그 이전의 크누트 대왕 같은 인물들 왕위에 오른 것도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죠. 어쨌든 헨리 4세는 자연히 자신에게 반대하는 귀족들을 제압해야했었습니다.


헨리 4세


헨리 4세의 아들인 헨리 5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를 평정했으며 이제 그 에너지를 국외로 돌리게 되죠. 바로 프랑스로 말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프랑스의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내분 상황이었던 프랑스를 장악하게됩니다. 그는 프랑스의 공주였던 카트린 드 발루아와 결혼해서 프랑스 왕위계승권리를 확인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인 헨리 6세가 태어난 직후 사망했습니다.


헨리 5세


헨리 6세는 거의 갓난아기 시절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정치는 섭정들이 도맡게 되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헨리 6세 시절의 권신들이 권력 다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은 복잡한 왕위계승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인 보퍼트 가문과 플랜태저넷 가문의 방계 가문인 요크 가문 등이 대립하게 되었으며 오래도록 후계자가 없었으며 군사적 능력이 없이 무능하다고 알려진 헨리 6세에게 요크 가문이 반기를 드는 계기가 됩니다. 헨리 6세에게는 군사적 능력이 부족했지만 그의 아내였던 앙주의 마거릿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서 갑옷을 입고 군대를 이끌고 요크 가문을 공격할만큼 강인한 여성이기도 했었습니다. 


헨리 6세


결국 이상황은 바로 장미전쟁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내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장미전쟁동안 요크 가문과 랭카스터 가문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치열한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은 번갈아가면서 권력을 잡게 되죠. 결국 이것은 요크 가문 출신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헨리 6세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를 살해하므로써 랭카스터 가문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랭카스터 가문의 끝이긴 했지만 장미전쟁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