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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9) 플랜태저넷 가문 : 잉글랜드 왕가

엘아라 2019. 12.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이번달은 대충 랭카스터와 요크가문까지 하면 끝날듯하네요 ^^


유럽의 통치 가문들....(9) 플랜태저넷 가문 : 잉글랜드 왕가




플랜태저넷 가문의 문장


존 왕의 뒤를 이은 인물은 존의 아들인 헨리 3세였습니다. 헨리 3세는 플랜태저넷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앙주 백작 조프리 5세의 후손(증손자)이긴 했지만 그는 더이상 앙주 백작이 아니었죠. 그래서 앙주 백작령을 잃은 뒤의 조프리 5세의 후손인 잉글랜드 국왕들에 대해서 플랜태저넷 가문 사람이라고 구별하기도 합니다.


헨리 3세는 어린 나이에 어려운 나라를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정치적 삶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들이 에드워드 1세라는 정도일까요. 아버지는 그에게 강력한 귀족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나라를 물려줬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그의 가문에 적대적인 인물과 재혼했으며 필요할때만 아들에게 도움을 원하죠. 그의 아내는 그에게 성실했지만 대신 잉글랜드에 자신의 친정 식구들을 한가득 데려왔고 안 그래도 불만이 많은 귀족들의 불만을 더 가중시켰습니다. 동생들 역시 너그러운 형, 오빠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필요할때는 반란을 서슴치 않았었죠. 그나마 헨리 3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 1세는 그와 달리 매우 강력하고 인기있는 군주였죠.



헨리 3세 무덤 조상



개인적으로 "기사 만렙, 군주 만렙"정도로 생각하는 에드워드 1세는 아버지인 헨리 3세와 달리 매우 강력한 기사이자 군주였습니다. 그는 국왕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귀족들을 제압할만한 군사적 정치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그는 리처드 1세처럼 십자군전쟁에도 참전했고 기독교가 중심사상이었던 중세에 이런 그의 행위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1세의 뒤를 이은 아들 에드워드 2세는 에드워드 1세와는 좀 다른 군주였습니다. 에드워드 2세가 지금 군주가 되었다면 아마도 소탈한 성품에 예술을 사랑하는 인기있는 군주가 되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세시대에는 맞지 않는 군주였습니다. 군사업무보다 건축등을 더 좋아했으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알려진 그는 당시 귀족들이 보기에는 연약한 군주로 보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총신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등은 그의 성적 정체성마저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에드워드 2세의 아내이자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놓여있던 이사벨 왕비가 국왕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그녀는 남편인 에드워드 2세가 더이상 국왕으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그녀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가 정당한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하죠. 그리고 그녀는 친정인 프랑스와 아들의 처가의 힘을 빌어서 잉글랜드로 갔으며 내전을 통해서 남편인 에드워드 2세를 사로 잡고 아들인 에드워드 3세를 국왕으로 즉위시키게 됩니다.



에드워드 2세의 무덤 조상


할아버지 에드워드 1세처럼 강력한 군주였던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에 의해서 왕위에 올랐지만 결국 어머니를 권력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스스로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후 그는 외삼촌들이 죽으면서 프랑스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하자 필리프 4세의 딸인 어머니 이사벨의 권리를 통해서 필리프 4세의 가장 가까운 남성 후손으로 자신이 프랑스 왕위에 올라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것은 프랑스내에 남아있던 잉글랜드 영지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그의 주장은 100년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죠.


에드워드 3세 시절 프랑스와의 전쟁은 잉글랜드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전쟁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에도 악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전쟁의 양상은 바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잉글랜드 역시 프랑스 내 영지의 통치권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었죠. 이런 상황은 에드워드 3세가 나이가들고 장남인 "흑태자"에드워드가 일찍 사망하면서 문제가 좀더 드러나게 됩니다. 오랜 전쟁으로 잉글랜드 상황도 그다지 좋지 못했으며 이것은 귀족들이나 일반평민들 모두에게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무덤 조상


 


리처드 2세는 에드워드 3세의 손자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전쟁과 에드워드 3세 마지막 시기의 혼란했던 정치 상황은 결국 리처드 2세 시기에 일련의 농민 봉기를 일어나게 됩니다. 리처드 2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기존의 권력자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합니다. 여기에는 숙부인 랭카스터 공작과 사촌인 볼링블룩의 헨리가 있었죠.  리처드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사촌을 추방합니다만 그의 정책에 반발하는 귀족들은 다시 헨리를 중심으로 뭉쳤고 헨리는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사촌인 리처드2세를 몰아내고 헨리 4세로 즉위합니다.


리처드 2세는 플랜태저넷 가문의 마지막 국왕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후 튜더 가문 출신의 헨리 7세가 등장할때까지 계속 플랜태저넷 가문의 후손들이 왕위를 잇게됩니다만 플랜태저넷 가문의 방계 가문인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으로 나뉘어지게 되고 이후로도 그렇게 구별되게 됩니다.



리처드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