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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11) 요크 가문 : 잉글랜드 왕가
요크 공작의 문장
요크 가문은 랭카스터 가문과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3세의 아들중 한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가문입니다.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었던 랭글리의 에드먼드는 아버지로부터 요크 공작 지위를 받아서 요크 공작이 되었죠, 에드먼드에게는 에드워드와 리처드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요크 공작이 됩니다만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공작위는 동생 리처드의 아들이었던 리처드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2대 공작의 동생이자 3대 공작 리처드의 아버지였던 캠브리지 백작 리처드는 앤 모티머와 결혼했는데 앤 모티머는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후손이었는데 이것은 후에 장미전쟁에서 요크가가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헨리 5세시절 캠브리지 백작 리처드는 헨리 5세에 대한 반란에 가담한 죄로 처형당했으며 같은 해 2대 요크 공작 역시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요크 공작 지위는 캠브리지 백작의 아들인 리처드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엔트워프의 라이오넬의 문장
요크 가문 사람들은 랭카스터 공작의 형인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의 후손이라는 명분을 들어서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했었습니다.
3대 공작인 리처드는 헨리 6세 시기에 가까운 왕실 친척중 한명으로 국정을 담당했던 인물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요크 공작은 헨리 6세의 다른 측근들, 특히 랭카스터 가문쪽 사람들과 사이가 나빴는데 특히나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인 보퍼트 가문 출신의 서머셋 공작과 사이가 나빴으며 더 나아가서는 헨리 6세의 왕비였던 앙주의 마거릿과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권력 관계는 결국 리처드가 스스로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왕위계승의 정당성으로 따지자면 랭카스터 공작의 형이었던 모계로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직계후손중 한명이었던 리처드가 더 명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헨리 6세의 측근들 특히 왕비에게는 반역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요크가문과 랭카스터 가문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거릿은 요크 공작의 목을 베서 그의 머리에 종이 왕관을 씌워놓고 조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
하지만 요크 공작의 죽음은 요크 가문의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에게는 뛰어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둘째아들인 에드먼드는 아버지와 함께 살해당했지만 남은 세아들들이 이제 요크 공작의 뒤를 잇게 되죠. 요크 공작 리처드의 장남이자 이제 아버지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는 사촌인 워릭 백작 의 도움을 얻어서 장미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는 랭카스터 가문과 그 지지자들을 패배시키고 헨리 6세를 감금했으며 왕비와 웨일스공은 프랑스로 도망가야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요크가문 출신의 국왕으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가 됩니다.
에드워드 4세가 즉위한후 사촌인 워릭 백작의 배반으로 위험에 놓이기도 했었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랭카스터 가문의 남성 계승자들 모두를 없애버렸으며 이제 확고하게 요크 가문의 왕위계승자가 잉글랜드 왕위를 이을것이라 여기게 만들었죠. 하지만 그의 생각은 결국 어긋나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4세는 아름다운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합니다. 이것은 그의 측근들 사이에 반목을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친정식구들은 수많은 권력자 가문들사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과한 행동들을 했었으며 이것은 도리어 에드워드 4세의 기존 측근들에게 불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워릭 백작의 배반이었죠. 비록 에드워드 4세 시절에 그의 반대 세력을 모두 억압할수 있었지만 그가 미성년의 자녀들만 두고 갑작스럽게 죽자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었던 리처드는 조카들이 정당한 계승권리가 없다고 여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조카들의 섭정이 되었었지만 곧 자신의 왕위계승을 주장하면서 왕위에 오르게 되죠. 그리고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은 런던탑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리처드 3세
이런 상황은 국왕에게 정통성이 부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며 여러 불만이 있는 귀족들이 뭉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인 보퍼트 가문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랭카스터 가문의 권리를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헨리 튜더가 있었습니다.
결국 1485년 헨리 튜더는 바다 건너서 잉글랜드로 왔으며 리처드 3세와 전투를 벌여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헨리 튜더는 에드워드 4세의 장녀로 남동생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가장 높은 왕위계승권리를 가진 요크의 엘리자베트와 결혼해서 장미 전쟁을 종식시킵니다. 이렇게 잉글랜드에는 튜더 왕가가 시작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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