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나바라의 인판타들...(15) 베렌겔라 산체스 : 산초 6세의 딸 (두번째)
베렌겔라 산체스
잉글랜드의 왕비
Berengaria of Navarre
(Basque: Berengela, Spanish: Berenguela, French: Bérengère;
(c. 1165–1170 – 23 December 1230)
베렝가리아와 리처드의 결혼에 대해서 둘의 결혼이 성립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논쟁으로 남아있었습니다만 적어도 베렝가리아는 십자군 전쟁에서 그의 아내로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1192년 십자군이 철수할때 베렝가리아는 남편보다 먼저 성지를 떠나 귀국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남편을 만날수 없게 되죠.
베렝가리아와 리처드
베렝가리아는 무사히 유럽으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남편인 리처드 1세는 유럽에서 오스트리아 공작의 포로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베렝가리아는 유럽 대륙에 머물면서 남편의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1194년 리처드는 드디어 몸값을 내고 풀려났지만, 그는 아내보다는 자신의 영지를 탐내고 배신한 동생 존과 그를 지원한 프랑스의 필리프 국왕을 상대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리처드는 이 때문에 아내와 함께하는 것은 신경쓰지도 않았었죠.
이런 상황은 결국 교황이 중재에 나서게 됩니다. 교황은 리처드에게 아내와 함께하라고 했으며 이에 리처드는 아내인 베렝가리아와 함께 지내고 교회도 함께 가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만 그것이 그가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했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베렝가리아는 남편인 리처드를 진정으로 사랑했었지만 리처드는 아내인 베렝가리아를 그저 정략 결혼 상대로만 대했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리처드 1세
베렝가리아는 남편이 살아있었을때는 잉글랜드에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죽은뒤 잉글랜드에 몇번 방문했었죠. 베렝가리아는 리처드1세의 과부로 연금을 받아야했지만 리처드의 동생인 존은 이를 주길 거절했습니다. 이에 존의 어머니인 엘레오노르가 중재를 했었는데 결국 존은 베렝가리아에게 줄 돈이 빚으로 남았습니다만 존의 아들인 헨리 3세가 이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베렝가리아는 주로 자신이 받은 영지인 르망 지방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수녀원의 후원자로 수녀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녀와 같은 생활을 했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만약 베렝가리아와 리처드와의 사이에서 아들이있었다면 그는 아버지를 통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영지들을 어머니를 통해서는 나바라를 물려받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베렝가리아와 리처드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기에 무의미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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