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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12) 나바라의 마르가리타 : 그라시아 라미레스의 딸
나바라의 마르가리타
시칠리아의 왕비
Margaret of Navarre
(French: Marguerite, Spanish: Margarita, Italian: Margherita)
(c. 1135 – 12 August 1183)
나바라의 마르가리타는 나바라의 국왕이었던 그라시아 라미레스와 그의아내인 마르거리트 드 레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리타는 어려서부터 시칠리아 국왕의 아들이었던 굴리엘모(시칠리아어 : 구기에르무Gugghiermu)와 결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이었는데 나이들어서도 그녀에 대해서 아름답고 늘씬하며 자부심이 강하다는 언급이 나온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타는 굴리엘모와의 사이에서 네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로게르 2세의 아들이었던 굴리엘모는 사실 왕의넷째아들로 오래도록 제1왕위계승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형들이 차례로 아버지보다 일찍 죽으면서 그가 왕위에 오른것이었죠. 이것은 시칠리아 왕국 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더우걷 복잡하게 만드는데 안그래도 힘이 강했던 시칠리 왕국의 귀족들과 다툼이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굴리엘모 1세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1166년 마르가리타의 남편인 굴리엘모가 사망하고 아들인 굴리엘모 2세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굴리엘모 2세는 미성년이었고 결국 마르가리타가 아들의 섭정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마르가리타는 섭정이 되면서 시칠리아의 귀족들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남편인 굴리엘모 1세가 살아있던 시기에 귀족들은 국왕에 대해서 반발이 심했었으며 이것은 그녀가 시칠리아 귀족들을 믿느니 차라리 자신의 친척들을 시칠리로 불러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귀족들이 와서 왕국의 통치에 관여하는 것은 귀족들의 반발을 더 확산시키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시칠리아의 굴리엘모 2세
마르가리타의 아들
마르가리타가 살아있는 동안 그녀는 네 아들중 세아들이 미리 사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굴리엘모 2세의 후계자로 시누이였던 코스탄차가 되는 것도 보았었죠. 코스탄차는 시칠리아 왕가에 남은 유일한 적자인 자녀였으며 굴리엘모 2세에게 후계자가 없으면 그녀가 상속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코스탄차의 혼담을 통해서 시칠리 왕국의 동맹을 얻으려했던 것이었습니다.
마르가리타는 아들인 굴리엘모 2세가 성인이 되면서 권한이 줄어들게 됩니다만 그래도 궁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타는 1183년 사망했으며 그녀의 아들인 굴리엘모 2세는 어머니보다 6년을 더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굴리엘모 2세에게 자녀가 없었기에 시칠리아 왕위 계승 문제가 발생합니다. 귀족들은 외국인과 결혼한 코스탄차보다는 로게르 2세의 장남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탄크레디를 왕위계승자로 내세웠고 이것은 코스탄차가 남편인 하인리히와 함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시칠리아로 와서 전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그의 아내인 시칠리아의 코스탄차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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