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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14) 베렌겔라 산체스 : 산초 6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9. 12.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헐...리처드 1세 왕비가 나오는군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14) 베렌겔라 산체스 : 산초 6세의 딸 (첫번째)




베렌겔라 산체스

잉글랜드의 왕비

Berengaria of Navarre 

(BasqueBerengelaSpanishBerenguelaFrenchBérengère

(c. 1165–1170 – 23 December 1230)



영어식 이름인 베렝가리아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베렝게라 산체스는 나바라의 국왕 산초 6세(산초 그라세스)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산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나바라의 산초 4세가 사망한뒤  레온-카스티야와 아라곤에 의해서 분할되었던 나바라의 영토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이것은 주변 국가들과 나바라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산초 6세의 아버지였던 그라시아 라미레스는 레온-카스티야의 국왕이었던 알폰소 7세의 딸과 결혼해서 동맹을 강화했었으며, 산초 6세가 즉위한뒤에는 누이였던 블란카를 알폰소 7세의 장남과 결혼시켰고, 그 역시 알폰소 7세의 딸인 산차와 결혼했었죠.



산초 6세


카스티야의 산차는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이었던 알폰소 7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바르셀로나의 베렌구엘라의 딸이었습니다. 산차의 어머니인 베렌구엘라는 당시 이베리아반도의 강력한 영주중 한명이었던 바르셀로나 백작의 딸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나바라의 산초 4세는 바르셀로나 백작 레몽 베렝게 4세와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만, 바르셀로나 백작은 처 외삼촌이기도 했었습니다.


산초 4세의 장녀였던 베렝가리아는 미혼으로 어머니가 사망했었고 아버지 산초 6세는 재혼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궁정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인 산초 6세는 모레알 지역의 영지를 부여해줬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 출신이었던 베렝가리아가 잉글랜드의 국왕인 리처드 1세와 결혼하게 된것은 리처드 1세의 어머니였던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관계가 됩니다. 나바라는 아키텐 공작의 영지와 경계가 닿아있었고 이것은 산초 4세가 아키텐의 군주였던 엘레오노르와 동맹을 맺는 계기가 됩니다. 엘레오노르는 아들인 리처드의 신붓감을 찾고 있었는데 아키텐과 비슷한 궁정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나바라 궁정에서 성장한 베렝가리아가 아들인 리처드의 신붓감으로 잘 어울릴것으로 여겼었다고 합니다. 또 이런 관계는 산초 6세의 조카였던 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가 엘레오노르와 헨리 2세의 딸이었던 영국의 엘리노어와 결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엘레오노르 다키텐의 씰

엘레오노르는 아키텐의 여공작으로 한때 프랑스의 루이 7세의 왕비였다가 그와 헤어지고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앙주 백작 앙리(헨리 2세)와 재혼했었습니다. 리처드 1세와 존 왕은 그녀의 아들들이죠.



하지만 베렝가리아와 리처드 1세와의 약혼은 바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리처드가 프랑스의 공주였던 알리스와 오래도록 약혼 관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리스는 약혼자의 집안인 잉글랜드 궁정에서 자라났는데 소문에 의하면 알리스는 리처드의 아버지인 헨리 2세의 정부가 되었으며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레오노르는 그 사실을 계기로 리처드와 알리스의 결혼을 무효로해야하다고 이야기하죠. 둘의 관게는 근친관계가 되기에 결혼할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프랑스와의 외교 문제가 달려있는 것이기에 매우 복잡한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엘레오노르는 며느리가 될 베렝가리아를 데리고 아들 리처드에게 찾아갑니다. 리처드는 이때 이미 십자군 전쟁을 떠나버렸었기에 엘레오노르는 베렝가리아를 리처드에게 데리고 가서 결혼시키는 편이 더 낫을 것이라 여겼었던듯합니다.


베렝가리아는 시칠리아에서 시누이이자 시칠리아 왕비였던 조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매우 좋은 친구가 되죠. 엘레오노르는 잉글랜드로 돌아갔고 베렝가리아는 조앤과 함께 리처드에게 가게 됩니다. 가는 도중에 그녀들은 배가 난파하면서 키프러스 통치자의 포로가 됩니다. 이 사실을 안 리처드는 여동생과 약혼녀를 구하러 키프러스로 갔으며, 이렇게 베렝가리아는 리처드와 만나게 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1세


그리고 1191년 5월 12일 키프러스의 교회에서 베렝가리아는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1세와 결혼했고 그의 아내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