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30) 덴마크의 다우마 :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여섯번째)

엘아라 2019. 11.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30) 덴마크의 다우마 :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여섯번째)




덴마크의 다우마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

Maria Feodorovna 

Princess Dagmar of Denmark

(26 November 1847 – 13 October 1928)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죽은뒤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3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해서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르 2세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완고한 인물로 알려지게 되죠.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이런 황제와 대비되게 매우 활발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됩니다. 수많은 무도회와 모임등을 열었으며 이런 그녀의 행동은 러시아 황후로써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더이상 행복했던 즐거운 가족생활을 누릴수 없고 이제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야하는것에 슬픔을 느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3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황후로써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러시아 사교계의 핵심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서였던 미헨 대공비였죠. 블라미디르 대공과 미헨 대공비는 야심 가득한 인물들이라고 알려져있었습니다. 특히 블라디미르 대공에 대해서는 큰형이 죽었을때 단순무식한 사샤가 아니라 블라디미르가 황위계승자가 되어야한다는 주장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마리야 표도로브나와 미헨 대공비가 서로 사교계의 라이벌이 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후는 블라디미르 대공부부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대접을 받았습니다.



미헨 대공비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동서


황후가 되었어도 그녀는 덴마크의 친청식구들과의 교류를 지속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덴마크로 갔으며 심지어는 남편인 황제도 자주 아내를 따라 덴마크로 가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완고한 성격의 알렉산드르 3세는 이런 가족모임에서 자주 의견마찰을 일으키고는 했다고 합니다만 황후는 늘 황제와 가족들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덴마크 왕실가족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 3세 부부



러시아 황실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기도 했었습니다. 황후의 시아버지였던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테러로 사망한뒤 알렉산드르 3세는 더욱더 강력하게 나라를 악누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은 만만치 않았으며 더욱더 심한 테러 시도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마리야가 기본적으로 자신은 물론 남편과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할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극은 테러로 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888년 황실 가족들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고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기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났죠. 이때 표트르 대제 이후 가장 덩치가 큰 로마노프 가문 사람이라고 알려져있었던 알렉산드르 3세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기차 지붕을 떠받히고 사람들을 구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의 건장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신장이 망가졌으며 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었습니다. 물론 겉보기에는 여전히 멀쩡해보였기에 대외적으로는 황제가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죠.



1894년 알렉산드르 3세의 마지막 공식 석상에서의 모습


이 상황은 아마도 황실에서 황태자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결혼을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니콜라이는 오래도록 친척이기도 한 헤센의 알릭스(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를 사랑했었습니다만 알릭스의 망설임과 황실의 반대에 직면해있었습니다. 알릭스의 성격은 러시아 황실과 맞지 않으며 또 혈우병 유전에 대한 고려도 해야했었죠. 하지만 결국 니콜라이는 알릭스와 약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황제의 병이 급속히 악화되었기 때문일것입니다. 


결국 알렉산드르 3세는 1894년 사망했는데 니콜라이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고 약혼녀였던 알릭스는 간신히 황제의 임종에 맞춰가서 시아버지의 축복을 받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리야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서 과부가 되었고 이제 그녀의 장남인 니콜라이가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3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