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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44) 앨리스 케펄: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첫번째)

엘아라 2019. 9.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직 집중이 잘 안되긴 하지만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44) 앨리스 케펄: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첫번째)



앨리스 프레데리카 케펄

Alice Frederica Keppel née Edmonstone;

(29 April 1868 – 11 September 1947) 


앨리스 케펄이라는 이름으로 에드워드 7세의 정부로 유명했던 앨리스 프레데리카 에드먼스턴은 1868년 4대준남작인 윌리엄 에드먼스톤과 그의 아내인 메리 엘리자베스 파슨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그는 해군 제독이었으며 하원 의원이었을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의 참모이기도 했었습니다. 앨리스는 어린시절 가족들에게는 "프레디Freddie"라는 애칭으로 불렸었다고 합니다.



앨리스의 아버지 

윌리엄 에드먼스턴



에드먼스턴 가문은 아주 오래된 스코틀랜드 가문중 하나였습니다. 앨리스는 어린시절 가문의 집이었던 던트레드 성에서 성장했는데 이 던트레드 성이 에드먼스턴 가문의 소유가 된것은 무려 14세기 시절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던 로버트 3세는 딸인 메리 스튜어트가 에드워드 에드먼스톤경과 결혼할때 이 던트레드 성을 결혼선물로 줬으며 이후에 이 성은 에드먼스턴 가문의 소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던트레스 성



당대 많은 상류층 여성들처럼 앨리스 역시 자신과 적당히 맞는 신분의 남자와 결혼합니다. 1891년 앨리스는 7대 앨버말 백작의 아들이었던 조지 캐펄과 결혼합니다. 조지 캐펄은 군인으로 일했었습니다. 사실 잉글랜드는 장자 상속제가 매우 철저하게 지켜졌기에 조지 캐펄이 백작의 아들이라도 그는 장남이 아니었기에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이런 귀족의 아들들은 자기가 먹고살 직장을 찾아야했고 상당수가 군인 아니만 성직자로 일하고 또 상속녀들과 결혼해서 기존의 삶을 꾸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위로 언니들이 엄청나게 많았기에 아마도 상속녀가 되기는 힘들었으며 조지 캐펄이 군인으로 일했다지만 이것은 먹고 사는 정도를 해결해줄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결혼생활에 재정적 문제에 부딪힙니다. 사실 둘다 귀족의 자녀로 상류사교계의 일원이었으며 이때문에 이들은 결혼전에 삶을 유지하려햇고 그러면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당대 사교시즌에 런던에서 지내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는데 이들의 수입으로는 그걸 감당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 이전의 화려한 삶을 계속 유지하기위해서 앨리스 케펄은 이제 돈 많은 남자들과 "친하게" 지내게됩니다. 앨리스 케펄이 처음으로 연애질을 했던 남자는 2대 그림소로프  남작이었던 어니스트 베켓으로 그는 은행가이자 군인으로 부유했으며 나중에 가문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앨리스 케펄의 첫째딸인 바이올렛에 대해서 집안에서는 그의 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2대 알링턴 남작이었던 험프리 스터트와도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어니스트 베켓


재미난 것은 아내의 연애질에 대해서 남편인 조지 케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스스로도 연애질을 하기도 했었지만 아내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는데 그는 아내에 대해서 "결국 늘 마지막에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관념으로 이해할수는 없지만 에드워드 시대의 귀족부부의 경우 사실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로의 체면때문에 이혼하거나 싸울수 없었기에 차라리 open marriage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죠. 



딸인 바이올렛과 함께 있는 앨리스 케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