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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45) 앨리스 캐펄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두번째)

엘아라 2019. 9.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45) 앨리스 캐펄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두번째)



앨리스 프레데리카 케펄

Alice Frederica Keppel née Edmonstone;

(29 April 1868 – 11 September 1947) 



앨리스 캐펄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여성이 됩니다. 그녀는 에드워드 7세의 많은 정부들처럼 재치있고 똑똑하고 위트있었을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즐겁게해주는 사람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앨리스는 사교계에서 인기가 있게 되었으며 아마도 이것은 그녀가 에드워드 7세의 정부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1898년 29살의 앨리스 케펄은 56살의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스 공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곧 웨일스 공의 정부가 되죠. 웨일스공은 주기적으로 앨리스 케펄의 집을 찾았는데 그가 올때면 그녀의 남편인 조지 캐펄은 늘 외출을 하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웨일스 공과의 관계는 앨리스 캐펄의 많은 지위를 바꾸게 됩니다. 특히 그녀는 이제 더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죠. 늘 자신의 정부들에게 너그러웠던 에드워드 7세는 역시 앨리스에게도 너그러웠으며 그의 친구이자 엄청난 부자였던 어니스트 카셀경이 그녀와 그녀 가족의 재정적 지원과 보증을 해주게 됩니다. 또 에드워드 7세는 이익이 되는 사업에 앨리스를 직접 참여시키기도 합니다. 덕분에 앨리스 케펄은 매년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이를테면 한 사업에서는 오만파운드(현 싯가로 750만파운드, 110억정도의 금액)을 벌어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에 국왕이 된 에드워드 7세는 개인 재산에 대한 사업도 그녀가 관여할수 있도록 했으며 심지어 앨리스 케펄의 남편인 조지 케펄에게도 높은 수입을 얻는 직장을 찾아주기도 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앨리스의 친정 오빠도 궁정에서 자리를 얻게 되죠.



에드워드 7ㅛ세


앨리스 케펄은 단순한 에드워드 7세의 정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한뒤 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까지 했죠. 그녀가 정치적 조언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뛰어난 말솜씨와 좋은 인맥을 유지하는 등의 능력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국왕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을뿐만 아니라 그녀가 궁정에서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앨리스 케펄이 많은 사람들에게 국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앨리스 캐펄


물론 이런 상황은 웨일스 공비였던 알렉산드라가 앨리스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라는 앨리스 케펄을 거의 워릭 백작부인만큼이나 싫어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앨리스가 남편인 에드워드 7세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서였을 듯합니다. 알렉산드라는 적어도 남편이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정부에게 대놓고 퍼주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달가울리가 없었죠. (물론 어느 누가 남편의 애인을 좋아하겠습니만...)


하지만 앨리스 케펄은 자신의 권력의 한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에드워드 7세가 없다면 자신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국왕의 건강을 신경썼고 그가 오래살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7세의 폭식하는 습관(...이건 집안 내력인듯..빅토리아 여왕도 그랬거든요. 물론 여왕은 그러고도 아주아주 오래 살았지만 말입니다.)이나 담배를 심하게 피우는 것을 고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성공하지는 못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