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나스타샤 마지막이군요. 아하하..-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22)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다섯번째)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비
Grand Duchess Anastasia Mikhailovna of Russia
Анастасия Михайловна;
(28 July 1860 – 11 March 1922)
아나스타샤는 슈베린에 있는 것을 싫어했지만 자녀들에게는 매우 다정한 어머니였으며 아이들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신경쓰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인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와 사이는 좋았지만 아들의 성품이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성품인것을 알고서는 좀더 일찍 결혼해서 가족 생활의 즐거움을 알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4년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는 하노버의 알렉산드라와 결혼합니다.
아들인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와 함께 있는 아나스타샤
이 결혼식에는 친척관계이기에 많은 유럽 왕가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그중에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후계자인 황태자 빌헬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아나스타샤의 막내딸인 체칠리를 보고 반하게 됩니다. 아나스타샤는 독일에서 매우 인기없는 인물이었으며 특히 친프랑스적 성향때문에 황제 빌헬름 2세가 그녀를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나스타샤의 막내딸인 체칠리는 빌헬름 2세의 며느리가 되죠. 하지만 베를린 궁정에서는 그녀를 매우 싫어했기에 그녀가 베를린 궁정에 오는 것을 딱 두번 허락했습니다. 바로 체칠리의 결혼식때와 체칠리가 첫아이를 낳았을때였죠. 주변사람들은 아나스타샤에게 딸의 행복을 위해서 딸이 사는 곳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
독일의 황태자 빌헬름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체칠리 약혼사진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인 미하일 대공은 뇌졸중으로 쓰러진뒤 남부 프랑스로 옮겨와 딸 근처에서 살다가 사망합니다. 아버지가 죽은뒤 아나스타샤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경제적 걱정이 없었던 아나스타샤는 20세기초반에는 자녀들과 친척들을 만나러 유럽 이곳저곳을 다녔으며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몬테카를로를 자주 드나들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을 봤던 아나스타샤에게 어울리는 삶이었죠.
하지만 아나스타샤 역시 친척이었던 유럽 왕족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는 1차 세계대전의 비극에서 피할수 없게 됩니다. 그녀는 러시아 출신이었으며 남동생인 미하일 대공은 영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은 독일쪽 군주였으며 막내딸은 독일의 황태자비이기도 했었죠. 아나스타샤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러시아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독일의 대공비였고 아들이 독일의 군주였었죠. 이때문에 그녀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머물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그녀는 슈베린으로 돌아가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중립국인 스위스로 가서 머물게 되죠. 아나스타샤는 전쟁동안 칸에 있던 그녀의 집은 부상당한 군인을 위한 병원으로 쓰도록 허락하기도 합니다. 아나스타샤가 중립국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들둘이 볼셰비키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또 전쟁이 독일측의 패배로 끝나면서 아들인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는 자신의 대공령의 군주 지위를 상실했고 막내딸인 체칠리의 가족들 역시 왕족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죠
동생인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함께 있는 아나스타샤 여대공
세르게이 대공 역시 혁명중에 볼셰비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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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뒤 아나스타샤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만 그녀는 독일왕족신분으로는 프랑스에 갈수 없었으며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서 러시아 국적 역시 쓸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촌이었던 예카테리나 유리예프스카야와 함께 몰래 프랑스로 입국해서 니스로 갔었고 결국 프랑스에 정착할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아나스타샤는 망명 러시아인들을 위한 단체를 구성해서 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1922년 아나스타샤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죽음으로 1차대전 이후 아나스타샤의 자녀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다고 합니다. (문득 예전에 앨리스 대공비 이야기를 읽을때 세실이 죽고 나서 앨리스까지 온가족이 모였을때 언니중 한명이 "세실이 죽어서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라고 슬퍼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비
아나스타샤는 남편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는 딸인 알렉산드린으로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와 결혼했으며 현 덴마크 여왕의 할머니입니다. 그녀는 다정한 성품으로 매우 가부장적이고 고집센 남편에게 순종적으로 살았지만 남편이 아이들이나 친척들(고모인 마리야 황태후)에게 함부로 할때 가슴아파했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들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이었던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입니다. 그는 1차대전이후 군주지위에서 물러나야했으며 한동안 누나가 있는 덴마크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돌아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끝무렵까지 살았던 그는 후에 소련군에 의해서 체포된 직후 사망했으며 동독 영역에 영지가 있었던 그의 가족들은 서독으로 피신해야했다고 합니다.
막내는 딸인 체칠리로 독일의 황태자인 빌헬름과 결혼했습니다. 1차대전이후 독일이 공화국이 되면서 체칠리 역시 어려움에 처합니다만 그녀는 독일에서 살면서 호엔촐레른 가문의 결속력을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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