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9)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 (두번째)

엘아라 2019. 7.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예전에 다 읽었던 사람들인데 왜 읽고 있는 내용이 새로운 것일까요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9)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 (두번째)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비

Grand Duchess Anastasia Mikhailovna of Russia 

Анастасия Михайловна

(28 July 1860 – 11 March 1922) 



1878년 아나스타샤 여대공이 18살도 되지 않았을때 아나스타샤의 결혼이 결정됩니다. 아나스타샤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나스타샤의 어머니인 올가 대공비와 아나스타샤의 사촌 올케였던 미헨 대공비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결정한 혼담이었죠. 


평생 야심만만하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미헨 대공비는 더 좋은 혼처인 러시아 대공과 결혼하기 위해 스스로 약혼을 깼다고도 알려져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친정집안이 러시아 여대공과 혼인을 맺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미헨 대공비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었기에 부유한 러시아 여대공과 자신의 오빠가 결혼한다면 가문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 여겼었죠.



미헨 대공비


1878년 봄 아나스타샤 여대공은 어머니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나스타샤 여대공은 여동생인 미헨 대공비를 방문한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프란츠를 만나게 되죠.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은 정치적으로 나름 독일의 중요한 대공국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프란츠의 증조할머니는 바로 러시아의 파벨 1세의 딸이었던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프란츠의 할머니는 프로이센의 알렉산드린으로 아나스타샤 여대공의 할머니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여동생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프란츠는 아나스타샤 보다 10살 가량 많았지만 대공령의 후계자였을뿐만 아니라 온화한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매우 나빴는데 천식과 발작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심장도 매우 약했었습니다. 아마 이런 병약함은 그가 오래도록 피부에 다양한 염증등을 앓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나스타샤는 자신보다 10살가량 많지만 매우 병약한 프리드리히 프란츠를 보고 매우 실망합니다. 게다가 피부염을 앓고 있는 그의 피부를 보고서 아나스타샤는 그와의 생활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죠. 하지만 왕가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으며 대부분 부모가 결혼을 결정했고 결정된 결혼을 함부로 깰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여자쪽에서 깨기는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아나스타샤의 오빠와 남동생들 역시 이 결혼에 대해서 매우 우울해했는데 아나스타샤가 러시아를 떠나 멀리 독일로 가야했기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부모는 딸이 미래의 통치군주의 아내가 될것에 대해서 매우 만족했었으며 결국 1878년 5월 아나스타샤와 프리드리히 프란츠의 약혼이 발표됩니다. 약혼이 발표된 직후 시누이가 될 미헨 대공비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새 올케언니가 될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의무와 지위에 잘 맞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나스타샤와 프리드리히 프란츠

약혼 사진


1878년 10월 아나스타샤는 가족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결혼 준비를 시작했으며 1879년 1월 겨울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아나스타샤는 정교회를 믿었으며 프리드리히 프란츠는 개신교를 믿었기에 결혼은 정교회식으로 한번 치뤄지고 이어서 개신교식으로 치뤄졌으며, 많은 유럽 왕가사람들이 참가한 호화스러운 예식이었습니다. 


결혼식후 아나스타샤는 이제 새로운 조국이 될 메클렌부르크-슈베린으로 떠나게 되죠.



아나스타샤 여대공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