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7) 바덴의 체칠리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엘아라 2019. 7.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7) 바덴의 체칠리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바덴의 체칠리

러시아의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Cäcilie Auguste of Baden

Grand Duchess Olga Feodorovna of Russia 

Ольга Фёдоровна

(20 September 1839 – 12 April 1891),  

 

 

올가 표도로브나는 시아버지인 니콜라이 1세가 사망한뒤 미하일 대공과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정치에 별로 관여할 마음이 없었죠. 아마도 이런 상황은 그녀 역시 러시아 정치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성격이 조용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하일과 올가의 결혼식

 

 

어머니인 소피아 처럼 똑똑했으며 위트있지만 신랄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 올가 표도로브나는 얌전하고 친절했지만 그다지 위트있거나 똑똑하지는 않았다는 남편과 매우 대비되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로 성격의 부부는 도리어 서로에게 잘 어울렸으며 평생 행복했다고 합니다. 조용한 성격의 대공은 활발한 성격의 아내에게 매우 큰 영향을 받았으며 평생 아내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올가 대공비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처럼 매우 엄격하게 대했으며 또한 남편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도록 했었습니다.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미하일 대공과 올가 대공비

 

 

아마도 이런 그녀의 성격은 궁정에서 그녀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가십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떠는 등의 일을 즐겼다고 합니다. 위트있는데다가 신랄함까지 갖추고 있던 그녀와의 대화는 아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뒷담화 상대가 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궁정내에서 그녀에 대해서 쑥덕대는 것 역시 피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올가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람들-특히 러시아 황실 가족들은 그녀의 출생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고 합니다. (당대 유대인에 대해서 러시아는 매우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올가의 생부가 유대인일것이라는 소문은 아마도 궁정내에서 그녀를 비웃는데 쓰였을 것입니다. )

 

 

 

장남과 함께 있는 올가 대공비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많은 왕족들처럼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여성 교육과 병원 사업에 관심이 많았으며 여성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후원했으며 여성을 위한 체육관을 건립하는등의 일을 합니다. 또 무료 구호를 위한 병원을 짓기도 했었습니다. 

 

올가 표도로브나는 남편과 평온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그다지특별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단지 그녀는 시조카인 알렉산드르 3세가 황실가족에 대한 지위를 개편하면서 황제의 손자들에게 까지만 Grandduke 지위를 쓰게한것에 대해서 매우 반발하면서 신랄하게 말했다는 이야기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올가는 평생 군인이자 총독으로 코카서스 지방(캅카스 지방)에서 있었던 남편을 따라 그 지방에서 거주했었습니다. 그녀는 총독 부인으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대신 귀족 부인들과의 사교생활에 전념했었으며 사회사업에도 열성적이었죠. 그녀는 아이들에게 전권을 휘두르는 어머니로 알려졌는데 이를테면 그녀의 딸인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의 결혼에 대해서 딸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결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딸들의 결혼은 어머니가 결정하는 것이었기에 그녀의 행동이 아주 독선적인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이미 어느정도 결혼 상대자들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관례이긴 했었습니다만 말입니다.)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의 딸

 

 

이런 올가는 결국 둘째아들인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메렌베르크의 소피아와 귀천상혼하자 매우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귀천상혼을 하면 계승권이 배제 당할뿐 아니라 상속권이나 러시아 내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죠. 그렇기에 올가는 아들이 자신의 뜻에 반해서 이런 결혼을 한것에 매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결혼 소식을 듣고 올가는 쓰러졌으며 간신히 정신차리긴 했지만 이후에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올가 대공비의 아들인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토르비 백작부인(여백작)

조피 폰 메렌베르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토르비 백작부인은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푸슈킨의 외손녀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사우 공작의 아들이었지만 푸슈킨의 딸과 귀천상혼했고 이들의 자녀는 모두 "메렌베르크 백작/백작영애"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올가는 러시아 궁정에서 그다지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신랄한 말을 자주 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또 자녀들에 대해서도 너무 엄격하게 대했던 것 역시 그녀가 호의적인 시선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듯합니다.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

 

올가와 미하일 대공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중 둘째인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만이 고명딸로 나머지 여섯 아이들은 모두 아들들이었습니다. 

장남인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역사학자로 알려져있는데 미혼으로 지냈으며 러시아 혁명당시 볼셰비키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둘째는 딸인 아나스타샤로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과 결혼했으며 그녀의 딸은 덴마크 왕비가 됩니다.

셋째는 아들인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으로 룩셈부르크 대공의 조카이자 푸슈킨의 외손녀이기도 한 메렌베르크의 조피와 귀천상혼했습니다. 그의 딸인 나데이다 데 토르비는 필립공의 외삼촌인 2대 밀포드헤이븐 후작 조지 마운트배튼과 결혼했었으며 또 다른 딸인 아나스타샤 역시 영국 귀족과 결혼했습니다.

넷째는 아들인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으로 그는 자신의 오촌인 그리스의 마리아와 결혼했습니다. (마리아는 게오르기 대공의 사촌이었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의 딸입니다.) 그는 볼셰비키에 의해서 살해당했으며 그의 아내인 마리아는 후에 그리스 장군과 재혼햇습니다. 

다섯째는 아들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으로 그는 오촌이었던 알렉산드르 3세의 딸이자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이었던 크세니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습니다.

여섯째는 아들인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으로 니콜라이 2세와 제일 가까운 친척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니콜라이 2세의 결혼전 정부였던 마틸드 크세신스카와 오촌이었던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삼각관계였던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역시 러시아 혁명시 살해당했습니다.

막내도 아들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만 19살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들들과 함께 있는 미하일 대공과 올가 대공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