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벌써 칠월이군요..ㅠ.ㅠ
세월 참 빨리 가네요. 새해 특집하려면 빨리 에마 왕비 책을 읽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아니면 락슈미바이 자료를 빨리 찾아야하는데 말입니다. (..-0-;;; 그러고보니 제니 제롬 전기가 있긴하네요.)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6) 바덴의 체칠리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 (두번째)
바덴의 체칠리
러시아의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Cäcilie Auguste of Baden,
Ольга Фёдоровна;
(20 September 1839 – 12 April 1891),
아마 체칠리에 대한 소문이 오래도록 나돌게 원인중 하나는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 약간 이국적이었던 그녀의 외모도 한몫했을 듯합니다.. 체칠리는 광대뼈가 매우 튀어나왔으며 눈이 쳐져있었기에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간 이국적인 외모였을 것입니다. 이런 그녀의 외모를 보면서 아마도 그녀의 출생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듯합니다. -0-;;;(하지만 턱이 작고 눈이 쳐진 모습은 바덴 대공 가문의 다른 후손들도 그렇거든요. 이를테면 체칠리의 어머니인 소피아와 사촌이었던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도 보면 쳐진눈이라죠.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은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것같구요.)
체칠리
체칠리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매우 엄격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대 많은 왕가의 사람들처럼 아이들은 고용인들이 돌보며 아이들은 잠시 부모들을 만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또 체칠리의 부모는 당대 많은 왕가 사람들처럼 아이들의 교육은 어머니의 책임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체칠리의 어머니인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매우 엄격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체칠리의 부모가 유달리 특이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왕가의 사람들 특히 독일쪽 왕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엄격함은 체칠리와 그녀의 부모의 관계가 좀더 의례적 관계가 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체칠리 역시 어린시절의 교육에 따라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대했었다고 합니다.
체칠리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엄격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교육에도 매우 신경을 쓰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체칠리는 어머니인 소피아를 많이 닮았는데 특히 소피아는 똑똑하고 위트있었지만 신랄한 인물이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를 닮았던 체칠리 역시 똑똑했지만 매우 신랄한 말을 서슴치 않는 인물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체칠리의 어머니
스웨덴의 소피아, 바덴의 대공비
체칠리 역시 어린시절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체칠리가 10살이 되기전은 1848년 바덴 역시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의 열풍에 휩쓸렸으며 대공가문 가족들은 1849년 결국 바덴을 떠나야했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 군의 도움으로 혁명은 진압되었으며 대공가문을 다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체칠리의 아버지인 레오폴트는 자유주의자였으며 이때문에 다시 대공령을 되찾은 후에도 자신을 쫓아낸 사람들에 대해서 자비를 베풀었었습니다. 하지만 체칠리가 13살이 되기전 1852년 그녀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사망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뒤 큰오빠인 루드비히가 대공지위를 이었지만 루드비히는 정신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대공령은 둘째오빠인 프리드리히가 잇게 됩니다.
체칠리의 아버지
바덴의 대공 레오폴트
아마 체칠리는 다른 많은 유럽왕가의 여성들처럼 조용히 교육받으면서 혼담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18살이 되기 직전은 1857년 8월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둘의 혼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진바는 없지만 일단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은 아니라 서로 반해서 한 결혼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둘이 만나게 된 계기는 체칠리의 오빠인 바덴의 프리드리히가 마하일의 사촌인 프로이센의 루이제의 결혼때 였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체칠리의 어머니인 소피아는 아들을 위해 좋은 가문과 혼담을 원했으며, 결국 프로이센 왕국의 후계자가 될 빌헬름(후에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의 딸인 루이제를 며느리로 맞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프로이센의 루이제 역시 스웨덴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루이제의 백모였던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는 조카인 스웨덴의 요세피나 왕비의 장남이자 스웨덴 왕위게승자였던 칼과 자신의 시조카인 루이제의 혼담을 진행했었습니다. 하지만 칼은 거의다 성사된 혼담을 파토냈으며 일방적으로 루이제와의 혼담을 깨버리게 됩니다. 당연히 그때까지도 베르나도트 가문의 스웨덴 왕가를 낮게 보던 프로이센 왕가는 매우 격렬하게 화를 냈었죠. 아마도 소피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루이제와 아들의 혼담을 추진했었던듯합니다.
체칠리의 오빠인 바덴의 대공 프리드리히 1세와 그의 아내인 프로이센의 루이제
둘의 딸인 빅토리아는 후에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체칠리는 미하일 대공과 결혼하면서 정교회로 개종했으며 정교회식 이름으로 올가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러시아에서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로 불리게 됩니다.
러시아의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니콜라이 1세의 아들. 체칠리의 남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8)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 니콜라이 1세의 손녀(첫번째) (0) | 2019.07.17 |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7) 바덴의 체칠리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0) | 2019.07.10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5) 바덴의 체칠리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첫번째) (0) | 2019.06.26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4)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네번째) (0) | 2019.06.19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3)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세번째) (0) | 2019.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