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4)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네번째)

엘아라 2019. 6.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14)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네번째)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대공비

Ducess Alexandra Frederica Wilhelmina of Oldenburg

Grand Duchess Alexandra Petrovna of Russia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Ольденбургская

Alexandra Petrovna Olʹdenburgskaya

(2 June 1838 – 25 April 1900) 



알렉산드라는 아들들과 함께 나폴리로 갔으며 그곳의 따뜻한 기후가 자신의 건강을 되찾게 해줄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알렉산드라가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러시아 황실 가족들 역시 방문합니다. 알렉산드라의 대자였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둘다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이 방문했었으며 놀랍게도 그녀의 사이 나쁜 남편인 니콜라이 대공 역시 그녀를 방문합니다. 1881년 1월 니콜라이 대공이 온 이유는 두 아들들을 데려가기 위해서였으며 그는 아들들을 데리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의 장남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그는 "니콜라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는 1881년 나폴리를 떠나 그리스로 갔습니다만 곧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알렉산드라는 다시 한번 황제에게 자신의 처지를 탄원합니다. 알렉한드르 2세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3세는 숙부인 니콜라이 대공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으며 숙모인 알렉산드라 대공비의 처지를 동정했었습니다. 그는 당연 숙부를 군대 지위에서 해제 시켰으며 알렉산드라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수 있게 해줬습니다. 


알렉산드라는 키예프에 있는 황제의 궁전에서 요양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 키예프에 머물기로 결정하죠. 알렉산드라는 자신과 이혼하고 정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절대 이혼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니콜라이 대공은 아내의 이 말에 아마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건강이 나빠서 언제나 골골댔으며, 그는 자신의 형인 알렉산드르 2세처럼 아내가죽고 나면 정부와 결혼할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알렉산드라의 남편


알렉산드라는 키예프에 머물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병원을 세웠으며 수녀원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1889년 남편이 살아있었음에도 수녀원에 들어가서 "아나스타샤 수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알렉산드라는 수녀로 평생 자선병원에서 붕대를 갈고 수술을 돕는 등 간호사 일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가 죽기만을 기다렸던 니콜라이 대공은 아내인 알렉산드라가 아니라 정부였던 예카테리나 치슬로바가 1889년 먼저 죽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2년후인 1891년 그 자신도 사망하죠. 


평생 증오했던 남편이 죽은 뒤에도 알렉산드라는 남편에 대한 적개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장지로 가는 중의 남편의 시신이 키예프를 통과하는 것 조차 거부해서 멀리 돌아가야했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샤 수녀로 살고 있던 알렉산드라는 여러 건강문제로 힘들어합니다만 남편보다도 훨씬 더 오래삽니다. 그녀는 1900년 자신이 살던 수도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알렉산드라 대공비

아나스타샤 수녀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2009년 우크라이나 정교회에서 시성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대공비 성 아나스타샤 수녀로 시성되었으며 모든 이혼한 사람의 수호성인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드라 대공비와 니콜라이 대공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장남은 "니콜라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니콜라이 니코라예비치 대공으로 매우 명망있던 군인으로 1차대전때 총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니콜라이 2세가 그를 해임하고 스스로 총사령관이 된것은 큰 실책중 하나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차남인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평범한 왕족으로 살았지만 그는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표트르 니콜라예비치대공


하지만 알렉산드라의 두 아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 두 며느리들입니다. 두 며느리들은 모두 몬테네그로 국왕의 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몬테네그로 자매들이 니콜라이 2세의 황후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에게 신비주의를 가르쳐준 인물들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알렉산드라가 신비주의에 몰입하면서 궁정내에서 고립을 자초하게 되고 라스푸틴을 기용하는 실수를 했기에 궁정내에서 알렉산드라의 두 며느리들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의 두 며느리

몬테네그로의 밀리차와 몬테네그로의 아나스타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