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번외편2. 유리예프스카야 공비(두번째)

엘아라 2019. 8.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번외편2. 유리예프스카야 공비(두번째)



유리예프스카야 공비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 공녀

Princess Yurievskaya(Светлейшая княгиня Юрьевская).

Princess Catherine Dolgorukova 

Екатери́на Миха́йловна Долгору́кова

(14 November 1847 – 15 February 1922),



황제와 예카테리나와의 관계가 매우 깊은 사이인것을 알자 주변 사람들은 많은 우려를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황실 가족들은 황제가 죽어가던 황후가 죽은뒤 예카테리나와 결혼해서 황후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죠.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만약 예카테리나가 황후가 된다면 정치적 권력에 다가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또 러시아에서는 황태후가 황후보다 높은 지위였기에 예카테리나가 황후가 된다면 그녀가 평생 사람들 위에 있는 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궁정 여성들이 예카테리나를 매우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황제는 사랑에 빠져서 에카테리나만 보였고, 이때문에 사람들은 황제에게 어린시절 시집와서 아이들 한가득 낳고서 키워줬던 이제 죽어가는 황후를 외면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황제가 테러에 대한 걱정으로 예카테리나와 그녀의 아이들을 겨울궁전으로 데려와서 병으로 침대에 누워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황후의 방위에 아이들의 방을 마련해준것은 모두가 보기에 너무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죽어가는 엄마를 만나러 왔던 마리야 여대공이 이 모습을 보고 아버지인 황제와 대판 싸운후 예카테리나와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황제와 예카테리나

그리고 둘의 아이들인 게오르기와 올가

1874년


결국 황후는 1880년 사망합니다. 궁정에서는 모두들 황제가 예카테리나와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자녀들을 포함해서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수 없었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황제는 결국 아내가 죽은지 한달정도가 되지 않아서 예카테리나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그는 그녀를 황후로는 만들지 않았으며 귀천상혼을 택했습니다. 결혼후 예카테리나에게 "유리예프스카야 공비"라는 칭호를 부여하죠. 하지만 법적으로만 황후가 아니었을뿐 황제의 아내로 황제는 그녀를 거의 황후처럼 대우해줬습니다.



유리예프스카 공비

1880년


사실 황제는 여러번 암살 시도를 당햇으며 이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예카테리나를 정식 아내로 맞아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또 예카테리나 역시 사랑하는 남자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떳떳하게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둘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하게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황후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정부와 결혼할 것을 알긴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애도기간은 지켜줄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둘러 저렇게 정부와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렉산드르 2세에게 황제로써, 아버지로써 모두 실망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궁정 여성들은 황제가 황후를 버린것이나 다름없게 만든 것이 예카테리나 때문이라고 믿었고 그녀에 대해서 철저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당시 궁정의 누군가는 남자들만 있었다면 아마 유리예프스카야 공비는 적당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2세 

1881년


이런 복잡한 정치적 문제등이 있었지만 황제와 예카테리나는 서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햇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생활은 얼마 되지 않아서 끝나게 됩니다. 바로 1881년 황제가 암살당하게 되죠. 어쩌면 황제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해서 사랑했던 예카테리나와 기어이 결혼했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황제가 폭탄테러로 끔찍한 모습으로 간신히 겨울궁전으로 돌아가서 사망하는데 예카테리나는 죽어가는 남편곁으로 뛰어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옷에 남편의 피를 가득 묻히고서는 오직 남편곁에 있으려했죠. 결국 황제는 사망했죠. 황제가 죽은뒤 예카테리나는 남편의 시신에 제일 나중에 키스하고 제일 오래 곁에 있으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녀를 싫어했던 여성들조차도 그녀의 이런 모습에 가슴아파했었다고 합니다.


남편인 황제가 죽은뒤 예카테리나와 그 자녀들은 문제가 됩니다. 당연히 황제의 가족들이었지만 러시아에 있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예카테리나는 아이들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기로 했으며 황실에서는 이에 대한 댓가로 연금을 지금하기로 하죠. 


예카테리나는 프랑스 등지에 살면서 러시아에서 주는 풍족한 연금으로 살았습니다만 러시아 황실에서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서 외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풍족한 생활도 1차대전이 일어나고 러시아 황실이 몰락하면서 끝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는 그리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을 겪으며 1922년 사망했습니다.



나이든 후의 유리예프스카야 공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