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6)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나 : 미겔 1세의 딸

엘아라 2019. 6.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흠흠흠....포르투갈 인판타들 다해가는군요.

아 어디하죠 ㅠ.ㅠ 이베리아 반도를 계속 하고 싶긴한데......솔직히 아라곤이나 카스티야는 왠지 손을 대기가 두렵습니다..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6)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나 : 미겔 1세의 딸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아나

룩셈부르크의 대공비 마리 안

Infanta Marie Anne of Portugal 

Maria Ana do Carmo Henrique Teresa Adelaide Joana Carolina Inês Sofia Eulália Leopoldina Isabel Bernardina Micaela Gabriela Rafaela Francisca de Assis e de Paula Inácia Gonzaga de Bragança

(13 July 1861 – 31 July 1942)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나는 포르투갈의 미겔 1세와 그의 아내인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아델하이트의 여섯째 자녀이자 다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외가에서 자라났는데 특히 186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외삼촌이 거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언니들이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 가문으로 시집갔었기에 그녀 역시 이런 관계 때문에 나름 가톨릭 왕가에서 그녀에 대해서 신붓감으로 눈여겨 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자신의 아들인 루돌프의 신붓감으로 마리아 아나를 고려하기도 했었는데, 루돌프가 그녀에 대해서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않았기에 이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나



마리아 아나는 막내 여동생인 마리아 안토니아가 결혼한 9년 뒤인 1893년 32살의 나이로 룩셈부르크 대공의 후계자인 기욤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가 그와 결혼하게 된것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였다고 합니다. 언니들 덕분에 마리아 아나 역시 여러 유럽 왕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는 나사우 공작의 아들이었던 빌헬름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와 마리아 아나는 어울리는 짝은 아니었는데 빌헬름은 신교도였으며, 마리아 아나는 가톨릭 교도였기에 일단 종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빌헬름은 나사우 공작의 후계자였지만 마리아 아나는 이름뿐인 인판타였죠.


1884년 빌헬름과 마리아 아나는 만나서 서로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만 빌헬름의 아버지인 나사우 공작 아돌프는 아들이 좀더 나은 조건의 여성과 결혼하길 바랬고 마리아 아나와의 관계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빌헬름이 오래도록 아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듯합니다. 



룩셈부르크 대공 기욤 4세


그런데 1890년 네덜란드의 빌렘 3세가 사망하고 그의 딸인 빌헬미나 공주가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이렇게 되자 살리카법을 따르던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 왕가의 남성 친척이었던 나사우 공작 가문에서 상속받게 되었으며 나사우 공작이었던 아돌프는 룩셈부르크 대공이 됩니다. 문제는 나사우 공작 가문은 신교도였는데, 룩셈부르크는 주민들이 주로 가톨릭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돌프의 후계자였던 빌헬름(기욤)은 이제 가톨릭을 믿는 아내를 찾아야했으며, 마리아 아나는 적합한 아내감이 됩니다. 게다가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위계승자는 마리아 아나의 의붓조카가 되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였으며,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계모이자 마리아 아나의 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와 사이가 매우 좋았기에 마리아 아나의 조건 역시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었습니다. 



마리아 아나와 기욤


그래서 마리아 아나는 룩셈부르크 대공의 후계자인 기욤과 결혼하게 된 것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결혼한 사이였기에 둘은 나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여섯 딸들이 태어나면서 룩셈부르크 계승 문제가 발생하게 되죠. 결국 기욤은 자신의 딸을 상속인으로 만드는 법안을 통과했으며 기욤과 마리아 아나의 딸들인 마리-아델라이드와 샤를로트가 이어서 룩셈부르크 대공령을 상속받게 됩니다. 현 룩셈부르크 대공은 샤를롵트 여대공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룩셈부르크의 대공비 마리 안


마리아 아나와 기욤 4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딸들중 장녀인 마리-아델라이드는 여대공이 되었지만 결국 퇴위해서 동생인 샤를로트에게 대공지위를 물려주고 수녀원으로 들어갔었습니다. 둘째딸인 샤를로트는 언니의 뒤를 이어서 룩셈부르크의 여대공이 되었죠. 셋째딸인 힐다는 슈바르첸베르크 공과 결혼합니다. 넷째딸인 안토니아는 바이에른의 왕태자였던 루페르트와 결혼했습니다. 다섯째딸인 엘리자베트는 투른운트탁시스 공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막내딸인 소피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3세의 막내아들인 에른스트 하인리히와 결혼했습니다.



여섯 딸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아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