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9)포르투갈의 마리아 테레사 :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딸

엘아라 2019. 7.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은 미겔의 딸들까지만 하고 끝내려고 했거든요.

자료도 없고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다음으로 보려고 하는 주제가 이베리아 반도의 나라들인 카스티야와 레온 아라곤 나바라를 보려고 했는데 이 나라들이 역사가 너무 복잡하더라구요. 특히 카스티야와 레온은 9세기의 아스투리아스 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구요. ㅠ.ㅠ 그래서 읽을 것이 너무 많아서 어쩔수 없이 시간을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라곤이나 나바라를 하고 아스투리아스 왕국부터 시작해서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을 봐야할지 아니면 아스투리아스 왕국부터 시작해서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을 보고 아라곤이랑 나바라를 봐야할지 고민중입니다. 여기 이베리아 반도 나라들이 막 연결이 되서 복잡한 상황이라 진짜 많이 읽어야할듯해요. 엉엉엉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9)포르투갈의 마리아 테레사 :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딸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마리아 테레사 데 브라간사

투른 운트 탁시스 공비

Maria Teresa of Bragança, 

Infanta of Portugal 

Maria Teresa Carolina Micaela Ana Josefina Antónia Francisca 

(26 January 1881 – 17 January 1945

아버지와 두 오빠들과 함께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는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요구자였던 브라간사 공작 미겔과 그의 첫번째 아내인 투른 운트 탁시스의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미겔은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미겔의 아들로 미겔이 왕위에서 쫓겨난뒤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을 주장했으며 이때문에 포르투갈에 오는 것을 금지 당했으며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했었습니다. 브라간사 공작 미겔은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특히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참모로 일했는데, 황제는 그를 매우 좋게 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관계는 그가 황제의 처조카였던 투른 운트 탁시스의 엘리자베트와 결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아 테레사의 어머니는 투른 운트 탁시스의 엘리자베트로 그녀의 아버지는 투른 운트 탁시스의 후계자였던 막시밀리안 안톤이었으며 엘리자베트의 어머니는 바로 시씨 황후의 언니였던 바이에른의 공작 영애 헬레네였습니다. 원래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선을 보기로 되어있던 사람은 시씨가 아니라 헬레네였는데 언니 따라왔던 시씨를 보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반해서 그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헬레네는 이후 투른 운트 탁시스의 후계자와 결혼했지만 그 역시 일찍 사망했고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유지하는데 힘을 다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이런 헬레네의 둘째딸이었고, 이름 역시 이모인 시씨 황후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17살에 자신보다 7살 많은 미겔과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트는 곧 첫아이를 갖습니다. 하지만 첫아이를 낳은 뒤 엘리자베트의 건강은 많이 나빠졌으며 결국 막내인 마리아 테레사를 낳은 직후에 사망하게 됩니다. 엘리자베트의 죽음은 헬레네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이후 헬레네는 공식석상에 더욱더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사의 아버지인 미겔은 아내가 죽은지 12년동안 홀로 지내다가 1893년에 사촌이었던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재혼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의 부모

브라간사 공작 미겔과 그의 아내인 투른 운트 탁시스의 엘리자베트



마리아 테레사는 1900년 투른 운트 탁시스의 체코쪽 분가 사람인 투른 운트 탁시스의 카를 루드비히와 결혼합니다. 투른 운트 탁시스 가문은 유럽의 우편업무를 장악해서 매우 부유한 가문이 되었는데 체코쪽 분가는 가문을 통치 군주 가문으로 만들었던 3대 공의 막내아들이 세운 분가였습니다. 이들은 체코쪽에 정착해서 이쪽 상속녀들과 결혼해서 기반을 다졌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오래도록 아이를 얻지 못해서 힘들어했었는데 결혼 13년만에 아들인 막시밀리안을 낳았습니다만 막시밀리안이 15살이 되던 1928년 막시밀리안은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카를 루드비히는 1942년 사망했으며 마리아 테레사는 3년 뒤인 1945년에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