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8)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 : 미겔 1세의 딸

엘아라 2019. 6.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미겔 1세의 딸들 다했습니다. 음냐...

미겔의 아들인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딸들에 대해서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네요.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8)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 : 미겔 1세의 딸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안토니아

파르마 공작부인

Maria Antónia of Portugal

Maria Antónia Adelaide Camila Carolina Eulália Leopoldina Sofia Inês Francisca de Assis e de Paula Micaela Rafaela Gabriela Gonzaga Gregória Bernardina Benedita Andrea

(28 November 1862 – 14 May 1959)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는 포르투갈의 미겔 1세와 그의 아내인 아델하이트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4살무렵 사망했으며 그녀는 외가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언니인 마리아 테레사와 함께 있는 마리아 안토니아



마리아 안토니아의 어머니는 딸들을 좋은 가문으로 시집보내려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뿐인 인판타 지위밖에 없는 마리아 안토니아의 자매들의 조건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으며 이때문에 자매들은 대부분 두번째 부인이나 세번째 부인이 되어야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1884년 22살의 나이로 자신보다 14살이나 많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열두명의 아이를 얻었던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2세와 결혼합니다.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



아마도 로베르토 2세와 결혼하게 된 계기는 언니인 아델군데스가 로베르토의 동생과 결혼했었던 것이 가장 큰 인연일듯합니다. (물론 로베르토 2세와 마리아 안토니아의 두 형부들은 모두 양시칠리의 공주들인 자매들과 결혼했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첫번째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피아와 함께 있는 로베르토 1세



마리아 안토니아 역시 로베르토 1세와의 사이에서 열두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평온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물론 남편이 죽고나서 전처의 아들과 그녀의 아들들 간에 복잡한 재산 싸움이 일어나긴 하지만 말입니다.



의붓딸인 베아트리체의 결혼식때 마리아 안토니아와 남편 로베르토 1세



마리아 안토니아의 딸들중 치타는 이모인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를 가끔씩 방문했었으며 여기에서 이모의 의붓손자인 카를을 만났고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황제가 되는 카를은 치타를 보고 반했지만 그녀에게 청혼하는 것을 미적대다가 그녀가 약혼할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에게 직접 확인을 받고서는 당장 그녀에게 청혼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안토니아는 후에 딸이 망명했을때 딸과 함께 지내기도 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후에 황제 카를)과 마리아 안토니아의 딸인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또 아들인 펠릭스는 마리아 안토니아의 조카인 룩셈부르크의 여대공인 샤를로트와 결혼했었으며 마리아 안토니아는 죽기전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룩셈부르크로 옮겨가서 지냈고 결국 그곳에서 사망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