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리아 요제파는 나름 평온하게 살아서 그런지 내용이 별로 없네요 .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4) 포르투갈의 마리아 조제 : 미겔 1세의 딸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조제
바이에른 공작부인 마리아 요제파
포르투갈의 미겔 1세의 딸
Infanta Maria José of Portugal
Maria José Joana Eulália Leopoldina Adelaide Isabel Carolina Micaela Rafaela Gabriela Francisca de Assis e de Paula Inês Sofia Joaquina Teresa Benedita Bernardina
(19 March 1857 – 11 March 1943),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이집 자매들은 진짜 많이 닮은것같아요.
독일식으로 마리아 요제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인판타 마리아 조제는 1857년 망명중이었던 포르투갈의 미겔과 그의 아내인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아델하이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조제는 비록 포르투갈의 인판타라는 칭호가 있었지만 그것은 이름뿐인 지위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미겔은 포르투갈에서 쫓겨났으며 망명생활중이었죠. 게다가 이런 아버지 마저 그녀가 9살때인 1866년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마리아 조제의 어머니였던 아델하이트는 매우 야망이 컸던 인물로 알려져있었으며 자녀들을 어떻게든 좋은 가문으로 시집보내려고 합니다. 비록 이름밖에 없는 인판타였지만 마리아 조제와 그녀의 자매들은 어쨌든 포르투갈 왕가 출신이었으며 또한 자주 겹사돈등의 친척관계를 유지해왔던 가톨릭 왕가들에게 "새로운 피"를 가져다 줄수 있는 공주들로 여겨졌었습니다. 특히 마리아 조제의 언니인 마리아 테레사가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그녀의 여동생들은 어머니의 바램대로 좀더 좋은 혼처를 찾을수 있게 됩니다.
마리아 조제
마리아 조제는 언니가 결혼한 다음해인 1874년 17살의 나이로 바이에른 공작인 카를 테오도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는 시씨황후의 남동생으로 프란츠 요제프 황제나 마리아 조제의 형부였던 카를 루드비히 대공과 사촌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가족 관계 덕분에 마리아 조제가 카를 테오도르와 결혼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바이에른 공작으로 바이에른 왕가의 분가중 한명이었습니다. 또 그의 증조할머니는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누나였으며 이런 관계 덕분에 이 가문은 바이에른 왕가의 분가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죠. 특히 카를 테오도르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은 바이에른 국왕의 딸인 루도비카와 결혼했었죠. 이때문에 카를 테오도르는 프로이센 왕비,작센의 왕비들,오스트리아 황제의 어머니등이 이모였으며 유럽의 여러 왕가와 친척관계를 형성햇었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형이 귀천상혼했기에 그가 가문을 이어가게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바이에른 공작 카를 테오도르, 마리아 조제의 남편
바이에른 공작가문을 이어받을 카를 테오도르와 마리아 조제가 결혼할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카를 테오도르가 재혼이었다는 것도 들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사촌인 작센의 공주와 결혼했었지만 그의 아내는 인플루엔자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카를 테오도르는 오래도록 재혼하고 있지 않다가 마리아 조제와 재혼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작센의 조피 마리, 카를 테오도르의 첫번째 아내
마리아 조제와 카를 테오도르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며 특히 첫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던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과의사로 정식으로 개업했었다고합니다. 물론 그는 생업이 아니었기에 환자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조제는 남편의 병원일을 도와서 간호사로 일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런 것은 그녀의 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그녀의 딸들 역시 아버지의 병원에서 일을 도왔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조제의 남편인 카를 테오도르는 1909년 사망했으며 그녀는 남편이 죽은후 30여년은 더 살았습니다.
카를 테오도르와 마리아 조제
마리아 조제는 카를 테오도르와의 사이에서 다섯아이를 낳았습니다.
첫째인 조피 아델하이트는 퇴링 백작가문으로 시집갔으며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인 엘리자베트는 벨기에의 왕위계승자인 알베르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왕비가 되죠. 현 벨기에 국왕은 이 엘리자베스 왕비의 증손자입니다.
셋째인 마리 가브리엘은 바이에른의 왕위계승자인 루페르트와 결혼했습니다만 34살의 나이로 병으로사망했습니다.
넷째인 루드비히 빌헬름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바이에른 공작이 되었지만 후손 없이 없었기에 누나인 마리 가브리엘의 손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다섯째인 프란츠 요제프는 미혼으로 24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다섯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조제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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