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1) 포르투갈의 마리아 다스 네베스 : 미겔의 딸

엘아라 2019. 5.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페드루 4세의 동생인 미겔의 후손들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번외로 넣을까 했는데 뭐 현 포르투갈 왕가의 수장이 이 미겔의 후손인것을 생각하면 그냥 넣기로 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81) 포르투갈의 마리아 다스 네베스 : 미겔의 딸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다스 네베스

Infanta Maria das Neves of Portugal

Maria das Neves Isabel Eulália Carlota Adelaide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de Paula de Assis Inès Sofia Romana, Infanta de Portugal[

(5 August 1852 – 15 February 1941



포르투갈의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미겔과 그의 아내인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아델하이트의 첫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비록 포르투갈의 인판타였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미겔은 평생 독일에서 망명중이었기에 인판타 마리아 다스 네베스 역시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겔과 아델하이트


마리아 다스 네베스의 아버지인 포르투갈의 미겔은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6세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형인 페드루가 브라질 황제가 되면서 애매해진 포르투갈 왕위문제에 개입해서 스스로 왕위를 얻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생전에 성급하게 반란을 획책하다가 포르투갈에서 쫓겨났었죠. 이후 아버지가 죽고 형이 귀국하기전 서둘러 포르투갈로 돌아와서 왕위를 주장하는데, 이에 페드루는 자신의 포르투갈 계승권을 딸인 마리아에게 물려주고 마리아와 미겔을 결혼시켜서 포르투갈의 왕위를 잇게하려했습니다. 하지만 미겔은 조카를 몰아내고 스스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죠. 하지만 미겔의 왕위는 잠시뿐이었는데, 브라질에서 퇴위한 페드루는 스스로를 브라간사 공작이라 칭하면서 딸의 포르투갈 왕위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유일하게 페드루의 딸인 마리아를 지지하던 아조레스 제도의 한 섬으로 갔고 거기서 내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미겔을 몰아내고 마리아의 왕위를 다시 되찾게 됩니다. 미겔은 형에게 밀려서 결국 왕위를 내려놓고 포르투갈에서 쫓겨나야했습니다. 이렇게 왕위를 잃고 지지기반도 거의 없었던 미겔은 포르투갈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며 결국 이것은 그가 오래도록 결혼하지 못한 이유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49살이었던 1851년 자신보다 29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합니다. 아마도 둘이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미겔


자신보다 29살이나 많은 왕위에서 쫓겨난 남자와 결혼한 마리아 다스 네베스의 어머니는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아델하이트는 사실 원래대로라면 포르투갈의 국왕과 결혼할만한 가문의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뢰벤슈타인 가문은 원래 팔츠 선제후 가문의 분가로 그녀의 조상은 팔츠 선제후의 귀천상혼한 자녀였습니다. 팔츠 가문의 계승권을 얻을수 없었기에 뢰벤슈타인 지역을 분배해주면서 뢰벤슈타인 이라는 성을 쓰게 된것이죠. 이후 이 가문은 독일의 작은 군주 가문들과 비슷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 대가문들과는 결혼하기 어려웠지만 비슷한 작은 가문들과 통혼해갔던 가문이죠. 아마도 미겔의 명목상 지위는 아델하이트가 결혼할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의 남자였을 것이며, 이때문에 그녀가 그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아델하이트


마리아 다스 네베스가 14살때 아버지인 미겔이 사망했습니다. 마리아 다스 네베스의 어머니인 아델하이트에게는 미성년인 일곱아이들이 남았으며 그중 여섯아이들이 딸이었습니다. 이후 아델하이트는 포르투갈의 인판타라는 이름뿐인 지위밖에 없는 딸들을 어떻게든 좋은 가문으로 시집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여동생인 마리아 테레사와 함께 있는 마리아 다스 네베스


그리고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19살이었던 1871년 산 하이메 공작이었던 알폰소 카를로스와 결혼합니다. 알폰소 카를로스는 에스파냐의 국왕 페르난도 7세의 동생으로 조카인 이사벨 2세의 왕위계승을 반대하고 스스로 왕위계승을 주장했었던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의 손자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정당한 에스파냐의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산 하이메 공작과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오촌관계였는데 마리아의 아버지인 미겔과 산 하이메 공작의 할머니인 인판타 마리아 프란시스카가 남매간이었습니다.



남편 산하이메 공작과 함께 있는 마리아 다스 네베스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1874년 첫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갓 태어나서 사망했으며 이후 그녀와 그녀의 남편사이에서 자녀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한 남편을 따라 에스파냐에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전장에 있는 마리아 다스 네베스


마리아 다스 네베스는 남편과 함께 오래도록 빈에서 살았으며 1936년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에서 빈에서 살다가 1941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마리아 다스 네베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