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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인판타들...(83) 포르투갈의 마리아 테레사 : 미겔의 딸 (두번째)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Infanta Maria Theresa of Portugal
Dona Maria Teresa da Imaculada Conceição Fernanda Eulália Leopoldina Adelaide Isabel Carolina Micaela Rafaela Gabriela Francisca de Assis e de Paula Gonzaga Inês Sofia Bartolomea dos Anjos de Bragança;
(24 August 1855 – 12 February 1944)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황제이자 시아주버니인 프란츠 요제프 조차도 그녀에게 함부로 무엇인가를 묻거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오래도록 궁정에서 의무를 다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했으며, 또 비록 계모이긴 했지만 황위계승권리를 가진 카를 루드비히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모두 그녀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의붓딸인 마르가레테 여대공과 함께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이때문에 전해져오는 일화가 하나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가 남편이 죽은 뒤 궁정에서 은퇴하자, 궁정에서는 그녀가 궁정에서 은퇴한 뒤 그녀의 집사장과 재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모두들 궁금해했지만 감히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에게 직접적으로 이에 대해서 묻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시아주버니이자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마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죠.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1890년대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궁정에서 은퇴한뒤 빈과 보헤미아를 오가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서 나서야할때는 과감하게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의붓아들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귀천상혼하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아 귀족 가문 출신의 조피 호테크와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식에 오스트리아 황실 가족 누구도 참석하려 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신랑의 여동생들인 두 딸들을 데리고 그 결혼식에 참석했었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조피 호테크의 결혼 사진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평생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호테크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한 뒤, 둘의 문제에도 관여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실에서는 조피 호테크가 귀천상혼한 아내이기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묘에 묻힐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자신의 아들은 가문의 영묘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묻히기를 바랄것이라고 하면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함께 묻힐수 있게 했습니다. 또 황실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아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려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분개했고 황제를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연금을 주지 않겠다면, 차라리 자신의 연금을 아이들에게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의 연금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황실 체면을 깍는 일이었기에 결국 그녀는 아이들의 연금을 얻어냈었죠. (프란츠 페르디난트에게 재산이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재산의 대부분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아닌 조카이자 후계자인 카를에게 돌아갔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인 호엔베르크 공작부인 그리고 둘의 세자녀들
또 그녀의 여동생의 딸인 부르봉 파르마의 치타는 이모인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를 만나러 갔다가 대공비의 의붓손자인 카를 대공을 만났었죠. 카를 대공은 치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미적 대다가 그녀의 혼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에게 사실을 확인한후 바로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카를과 치타의 결혼식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조카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카를이 다른 조카들과 달리 통치가문의 여성인 치타와 결혼한것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후 황제 카를과 치타 황후는 마데이라로 떠나야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이들을 따라 마데이라까지 갔었습니다만 후에 다시 빈으로 돌아와서 빈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1929년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1차대전이 일어난뒤 많은 황족들이 몰락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대공비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나폴레옹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팔려합니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자신의 두번째 아내였던 마리 루이즈에게 선물한 것으로 마리 루이즈는 조카며느리가 되는 조피 대공비(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어머니이자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의 시어머니)에게 물려줬으며, 조피 대공비는 이것을 아들인 카를 루드비히게 물려준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목걸이를 팔려고 만난 인물은 사기꾼이었으며 대공비의 목걸이를 헐값에 사려했었다고 합니다. 대공비는 고소를 했고 간신히 이 목걸이를 돌려받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대공비는 이 목걸이를 죽을때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맨 바깥쪽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아마 나폴레옹이 마리 루이즈에게 줬던 목걸이인듯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는 2차대전중인 1944년 빈에서 사망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1940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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