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포르투갈의 인판타들 의외로 빨리 끝날 분위기입니다만 미겔의 딸들을 번외로 넣으면 좀 더 많아지겠죠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9)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나 : 마리아 2세의 딸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나
작센의 왕자비
Infanta Maria Ana of Portugal
Maria Ana Fernanda Leopoldina Micaela Rafaela Gabriela Carlota Antónia Júlia Vitória Praxedes Francisca de Assis Gonzaga;
(21 August 1843 – 5 February 1884)
마리아 아나는 포르투갈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2세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의 페르디난트의 다섯번째 아이이자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만 위의 언니는 사산된채 태어났기에 실제로는 장녀였습니다. 위로 오빠만 셋이 있었던 마리아 아나는 1853년 어머니인 마리아 2세가 사망하자 겨우 10살의 나이로 궁정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이 됩니다. 그리고 이 지위는 마리아 아나의 오빠였던 페드루 5세가 1858년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스테파니(에스테파니아 왕비)와 결혼하면서 바뀌게 되죠. 하지만 에스테파니아와 마리아 아나는 매우 사이가 좋은 올케-시누이사이였으며 마리아 아나는 궁정내 자신의 지위가 바뀐것에 대해서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2세의 자녀들
1854년
마리아 아나는 가족내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오빠들 특히 페드루 5세의 사랑을 받았던 여동생이었습니다. 페드루 5세는 친척이었던 영국의 앨버트 공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리아 아나에 대해서 매우 칭찬을 했으며 "우리 가족의 진주"라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나
1857년
15살의 마리아 아나는 1859년 5월 11일 26살의 작센의 게오르그와 리스본에서 결혼합니다. 작센의 게오르그는 작센의 국왕 요한과 그의 아내인 바이에른의 아말리 아우구스테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게오르그의 어머니인 아말리 아우구스테는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바덴의 카롤리네의 쌍둥이 딸들중 한명이었죠. 마리아 아나의 올케 언니였던 에스테파니아 왕비는 시누이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루려했지만 포르투갈과 작센 모두 결혼식을 조용히 치루길 원했다고 합니다.
작센의 게오르그는 포르투갈 왕가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고 결혼후에 여러가지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겨우 열다섯살의 어린 마리아 안나에게 상처가 되었고 그녀는 남편의 행동에 울기까지 했었습니다.
작센의 게오르그
결혼 직후 마리아 아나는 남편과 함께 작센으로 가게 됩니다만, 포르투갈 출신의 시녀를 한명도 데려가지 못했으며 갈때 오직 오빠인 루이스만이 따라갔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 아나의 오빠인 페드루 5세는 유감스러워햇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게오르그는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듯한데 그는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은 마리아 아나가 남편과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아나는 어머니처럼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둘은 비록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덟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첫아이인 마리와 함께 있는 마리아 아나
열일곱살때
1883년경 마리아 아나의 막내 아들인 알베르트는 매우 아팠으며 마리아 아나는 막내아들을 낫게 하기 위해 너무나 열심히 간호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병에서 회복되었지만 마리아 아나가 도리어 몸이 약해졌으며 결국 1884년 마리아 아나는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1902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아내가 죽은뒤 게오르그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을 보냈습니다.
막내아들인 알베르트와 함께 있는 마리아 아나
마리아 아나와 게오르그 사이에서는 모두 여덟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중 여섯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딸인 마틸드는 원래 오스트리아 황위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그가 조피 호테크와 귀천상혼하는 바람에 혼담이 깨졌고 이후 미혼으로 지냈습니다.
장남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이미 백부에게 후계자가 없었기에 어린시절부터 왕국의 후계자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작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3세가 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대공이었던 투스카나의 루이제와 결혼했었지만 루이제가 가정교사랑 야반도주하면서 이 결혼은 엄청난 스캔들로 끝나게 됩니다.
자녀들과 함께 있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3세
둘째딸인 마리아 요제파는 아마도 언니와 함께 오스트리아 대공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던듯합니다. 언니의 결혼은 깨졌지만 마리아 요제파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조카인 오토 프란츠 대공과 결혼했었고 프란츠 요제프의 뒤를 있는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카를의 어머니가 됩니다.
두 아들인 카를(후에 황제 카를)과 막시밀리안과 함게 있는 마리아 요제파
둘째아들인 요한 게오르그는 대학에서 공부했고 왕족으로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셋째 아들인 막시밀리안은 가족의 반대에도 가톨릭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막내아들인 알베르트는 미혼으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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