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13)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 페드루 2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9. 4.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13)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 페드루 2세의 딸(두번째)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비

Princess Leopoldina of Brazil 

Leopoldina Teresa Francisca Carolina Miguela Gabriela Rafaela Gonzaga; 

(13 July 1847 – 7 February 1871) 

1864년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트의 결혼 조약은 페드루 2세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2세 사이에 체결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루드비히 아우구스트가 왕위계승자와 결혼할것이라고 여겼었지만 그렇지 않게 되었기에 아마도 여러가지 불만사항등이 조건으로 나타나게 되는듯합니다. 사실상 페드루 2세는 레오폴지나를 황위계승자로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서 레오폴지나와 그 자녀들에게도 계승권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으며 레오폴지나가 자녀들을 브라질에서 낳아야하고 그녀의 아이들 역시 브라질에서 살아야한다는 조건 역시 붙게 되죠.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아우구스트


결혼 협상이 체결된뒤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는 1864년 12월 15일 결혼식을 올렸으며 리우데자네이로에 있는 저택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해군이었던 루드비히 아우구스투스는 파라과이 전쟁 당시 동서였던 외 백작처럼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었으며 브라질 해군 지위를 유지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두 사위들인 가스통과 루드비히 아우구스트와 함께 있는 페드루 2세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트는 아마도 레오폴지나의 언니인 이자벨과 외 백작 부부와는 달리 정치에 연관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곧 자녀들을 얻게 되죠.

레오폴지나도 결혼 초 한번 유산을 했습니다만, 1866년 3월 19일 첫 아이인 페드루 아우구스토가 태어납니다. 페드루 아우구스토는 페드루 2세가 제일 좋아한 외손자였다고 합니다.이후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는 유럽과 브라질을 오가면서 살았는데 레오폴지나는 아이를 낳기 위해  브라질로 돌아왔었으며 1867년과 1869년 아우구스트와 조제프를 브라질에서 낳았습니다. 하지만 넷째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안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는 오스트리아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으며 막내인 루드비히는 187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납니다. 아마도 거의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았던 레오폴지나가 막내아이를 임신했을때 브라질로 여행할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할수 있을듯합니다.



첫아들과 함께 있는 레오폴지나 부부


1871년초 레오폴지나는 갑작스러운 병을 앓게 됩니다. 그녀는 매우 열이 심했으며 거의 죽을뻔하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형적인 장티푸스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레오폴지나의 증상은 아주 빨리 진행되었으며 섬망등의 증상까지 보이게 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머물고 있던 언니 이자벨과 형부인 외 백작 역시 레오폴지나의 증상을 그대로 보게 되죠.


결국 레오폴지나는 1871년 2월 17일 23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죽음에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30일간의 공식적인 애도기간을 선포했었으며, 레오폴지나는 코부르크에 있는 영묘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레오폴지나

1868년



레오폴지나의 남편인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는 브라질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페드루 2세는 외손자들의 계승권을 보호라기 위해 아이들은 브라질로 돌아오게 했었죠. 그리고 큰 외손자인 페드루 아우구스토를 매우 좋아해서 심각하게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것을 고려할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이후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는 재혼하지않았고 세계를 떠돌면서 여행을 하는 등의 일을 했고 브라질 제국이 무너진뒤에는 오스트리아 해군으로 일하기도 햇었다고 합니다.



두 아들과 어머니 클레망틴 공주와 함께 있는 루드비히 아우구스트



레오폴지나의 장남인 페드루 아우구스토는 외할아버지인 페드루 2세가 가장 사랑한 외손자로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로 외손자를 고려할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질이 공화국이 된 뒤 좌절감과 우울감을 경험했으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우울증이 극심해졌고 평생을 우울증에서 헤어나올수 없었다고 합니다.



첫 외손자인 페드루 아우구스토와 함께 있는 페드루 2세 부부



레오폴지나의 둘째아들인 아우구스토(아우구스트)는 형과 마찬가지로 브라질 국적으로 제위 후계자중 한명으로 성장했지만 형과 달리 현실에 적응했으며 브라질이 공화국이 된뒤 오스트리아 해군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토스카나 분가쪽 출신이었던 카롤리네 마리아 여대공과 결혼했으며 둘사이에서는 여덞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생 브라질을 그리워했었지만 브라질에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우구스트


레오폴지나의 셋째아들인 조제프 페르디난트는 결핵으로 19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레오폴지나의 막내아들인 루드비히는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1903년에는 대위가 되었습니다만 결국 1907년 군에서 은퇴했다고 합니다. 그는 1900년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3세의 딸이었던 마틸데 공주와 결혼했었으며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만 마틸데는 1906년 사망합니다. 그리고 1년후인 1907년 그는 안나 폰 트아루트만도르프-바인스부르크와 재혼했으며 둘사이에 딸이 한명있었다고 합니다.



아내인 마틸다와 첫아이와 함게 있는 루드비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