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12)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 페드루 2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9. 4.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레오폴지나도 일찍 사망했네요.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12)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 페드루 2세의 딸(첫번째)



브라질의 레오폴지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비

Princess Leopoldina of Brazil 

Leopoldina Teresa Francisca Carolina Miguela Gabriela Rafaela Gonzaga; 

(13 July 1847 – 7 February 1871) 

아마도 견진성사때쯤인듯합니다.



브라질의 레오폴지나는 1847년 브라질의 황제인 페드루 2세와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테레사 크리스티나의 셋째아이이자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인 레오폴지나는 친할머니였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이름을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두 딸과 함께 있는 페드루 2세 부부


레오폴지나는 언니 이자벨과 함께 성장했었습니다. 페드루 2세는 딸들의 교육에 매우 신경을 썼으며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공주들은 일주일에 육일을 공부했는데 아침 7시에서 오후 9시 30분까지 수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황제앞에서 시험을 쳐야했었다고 합니다. 공주들은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그리스어를 배웠으며 대수학,기하학,물리학,식물학,역사,동물학,광물학,철학등을 배웠을뿐만 아니라 그림과 피아노를 배우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언니인 이자벨과 친구와 함께 있는 레오폴지나



레오폴지나는 가정교사이자 아버지인 페드루 2세가 매우 흠모했던 여성이었던 바랄 백작부인에 대해서 어머니인 테레사 크리스티나처럼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머니처럼 바랄 백작부인이 아버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싫었을 듯합니다.



어린시절의 레오폴지나

1853년



아마 레오폴지나는 언니인 이자벨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아버지 아래서 순종적인 딸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황위계승자였던 언니 이자벨조차도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에 언니보다 황위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있던 레오폴지나는 아마도 언니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브라질 제국의 황위를 계승할 후보자중 한명이었기에 그녀의 결혼은 단순히 그녀 개인의 결혼이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왕가의 결혼처럼 그녀의 결혼도 부모가 결정한 정략결혼이 됩니다.


페드루 2세는 딸들을 위해 신랑감을 찾았으며 프랑스 왕가로 시집간 누나 프란시스카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는 누나의 아들인 팡티에브르 공작과 매형의 조카였던 플랑드르 백작을 딸들의 남편감으로 생각했지만 둘다 이 혼담을 거절했죠. 대신 페드루 2세의 매형이었던 주앵빌 공은 자신의 조카들인 외 백작 가스통과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를 신랑감으로 추천합니다.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의 루드비히 아우구스트



처음에 결혼협상을 진행할때 루드비히 아우구스트를 이자벨의 신랑감으로, 가스통을 레오폴지나의 신랑감으로 거론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페드루 2세는 딸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신랑을 결정할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두 젊은이는 브라질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가스통과 이자벨 그리고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투스의 약혼이 발표되죠.



레오폴지나와 루드비히 아우구스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