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 (10) 브라질의 이자벨 : 브라질의 페드루 2세의 딸 (다섯번째)

엘아라 2019. 3.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 (10) 브라질의 이자벨 : 브라질의 페드루 2세의 딸 (다섯번째)





브라질의 이자벨

브라질의 황위계승자

Isabel, Princess Imperial of Brazil

(29 July 1846 – 14 November 1921), 

nicknamed "the Redemptress"

Isabel Cristina Leopoldina August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de Bragança

1887년



1881년 브라질로 돌아간 이자벨과 외 백작은 다시 이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브라질 상황은 나빠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페드루 2세의 존재는 브라질에서 아직까지는 권위가 있었으며 이런 아버지의 그늘아래서 이자벨은 편안하게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자벨도 황위계승자로써 이런저런일들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고 있었죠.


1887년 이자벨과 가스통은 다시 한번 유럽을 방문하러 갑니다만 중간에 되돌아와야했습니다. 페드루 2세의 건강이 나빠졌고 유럽에서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었죠. 결국 이자벨은 돌아와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시 한번 섭정이 되어야했습니다.




1887년 유럽으로 향하는 페드루 2세 부부와 주변 사람들



1880년대 상황은 1870년대 상황보다 더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브라질 내에서 노예 해방에 대해서 더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정부 관료들은 더욱더 늦게 노예 해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불만을 더욱더 가중시키는 것이었으며 이자벨은 이에 대해서 압력을 행사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치안 상황이 더욱더 악화되기까지 합니다. 결국 1888년 이자벨은 노예해방을 더 추진할수 있는 사람을 수상으로 교체했으며 1888년 5월 13일 노예제로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령이 발표되고 여기에 이자벨을 서명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이자벨은 "Redempress"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죠.


하지만 브라질 상황이 안정되지는 않았기에 페드루 2세는 서둘러 브라질로 돌아오게 됩니다. 황제가 브라질로 돌아오면서 이자벨은 다시 섭정지위에서 물러나게 되죠. 하지만 브라질 상황은 황실 가족들에게 나쁘게 돌아갑니다. 황제는 아팠으며 이자벨은 다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버렸기에 노예제도를 폐지하므로써 얻을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대신에 부유층이자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농장지주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죠. 이들은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부를 쌓았었는데 노예제도를 폐지하므로써 이들은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죠. 


이자벨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적극적인 정치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이때문에 그녀가 여제가 된다면 남편인 가스통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가스통 역시 귀가 안들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고립되고 있었으며 또한 외국인이었기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은 이자벨과 가스통의 인기를 점차 더 떨어지게 했으며 핵심 권력층이 이들에 대해서 더욱더 불신하게 만들었죠.



세 아들과 함께 있는 이자벨 부부

1885년


죽어가는 황제와 믿을수 없는 후계자를 두고 있었기에 브라질의 내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결국 공화주의자들이 점차 더 힘을 얻게 됩니다. 결국 이런 불만은 쿠데타로 이어지게 되죠.

1889년 11월 15일 쿠데타가 발생했고 페드루 2세는 퇴위하기로 결정합니다. 페드루 2세는 쿠데타 지도자들 앞에서 "이렇게 된다면 나는 이제 그만 은퇴할것이오. 나는 너무나 많이 일을 했으며 지쳤소. 이제 나는 쉴수있겠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1889년 쿠데타 지도자들과 만나는 페드루 2세와 이자벨


그리고 쿠데타가 일어난 이틀뒤에 페드루 2세는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떠났으며 이제 황실 가족들은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