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3) 노르망디의 에마 : 애설레드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9. 2.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째 정치 상황만 적는것 같습니다..ㅠ.ㅠ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3) 노르망디의 에마 : 애설레드의 왕비(두번째)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Emma of Normandy

 (c. 985 – 6 March 1052)

책을 헌정받는 에마


남편이 죽고 난뒤 에마의 상황은 잉글랜드의 정치 상황만큼이나 애매해습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친정인 노르망디 공작가문이 버티고 있었기에 중요한 여성이기도 했었습니다. 크누트가 에마의 의붓아들인 에드워드 아이언사이드를 꺽으므로써 "정복왕"이라는 자격으로 잉글랜드의 왕위를 얻게 되자 에마와 그녀의 아들들은 더 애매해지게 되었죠.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는 크누트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죽었으며 잉글랜드가 크누트의 손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크누트는 당연히 자신의 왕권에 도전할만한 경쟁자들을 모두 배제하려했습니다.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의 아들들을 스웨덴으로 보내서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그 아이들은 후에 키예프로 빼돌려져서 목숨을 건지게 되죠. 에마 역시 남편인 애설레드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들이 있었으며 이 아이들 역시 크누트가 위협으로 여겨었습니다. 하지만 에마의 친정 오빠인 노르망디 공작은 무시할수 없는 세력이었으며 결국 에마는 크누트와 결혼하므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입니다. 에마와의 결혼은 노르망디 공작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크누트도 나쁘지 않게 여겨을 것입니다. 에마는 크누트와 결혼했고, 애설레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친정인 노르망디로 보내지게 되고 거기서 성장합니다.



크누트 대왕



11세기의 에마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크누트와 에마의 결혼은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이었지만 둘은 곧 애정어린 관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사실 크누트는 에마와 결혼하기전 노샘프턴의 앨프기푸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에마와 다시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중세시대이기에 기록이 부족해서 앨프기푸가 크누트가 에마와 결혼한후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수는 없지만 후대에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크누트가 에마와 결혼하면서 그녀와 헤어졌다고 볼수는 없을 듯합니다. 

어쨌든 에마는 크누트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하르사크누트와 딸인 군힐다를 낳았었죠.


강력한 국왕이었던 크누스 생전에는 에마가 그리 크게 나설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크누트가 죽으면서 일이 복잡하게 됩니다. 크누트가 죽으면서 크누트의 아들들인 해롤드 헤어푸트(토끼발)과 하르사크누트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르사크누트는 덴마크 왕위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해롤드는 반대로 잉글랜드 왕위를 얻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크누트와 두 아들인 해롤드와 하르사크누트



하지만 에마가 크누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하르사크누트는 물론 전 남편인 애설레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에드워드와 앨프레드 애설링 역시 잉글랜드의 왕위를 주장할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에마와 하르사크누트는 해롤드를 견제하기 위해서 노르망디에 있던 이들을 불러들였을 듯합니다. 에드워드와 앨프레드 애설링은 하르사크누트의 보호아래 잉글랜드를 방문합니다만 하르사크누트가 잉글랜드에 없는 틈을 타서 공격을 받아서 앨프레드 애설링을 사로잡았으며 달군쇠로 그의 눈을 멀게 되었고 결국 그 상처때문에 앨프레드 애설링은 사망하게 됩니다. 반면 에드워드는 간신히 해롤드를 피해서 도망갔고 다시 노르망디로 돌아가게 되죠. 


이 사건은 대체적으로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을 가진 에마의 아들들을 견제하기 위해 해롤드 헤어푸트가 이들을 제거하려 한것으로 여깁니다.하지만 당대 하르사크누트와 에드워드는 모두 이 일의 책임이 당시 웨섹스 백작이었던 고드윈에게 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고드윈이 앨프레드를 사로잡아서 해롤드에게 보냈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이 사건은 에마와 하르사크누트가 해롤드를 더 경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두 아들을 오빠인 노르망디 공작에게 소개시켜주고 있는 에마


이런 갈등 상황은 1040년 끝나게 되는데 해롤드 헤어푸트가 죽으면서 하르사크누트가 왕위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르사크누트 역시 얼마 살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이 중간에 에마는 하르사크누트의 이부형이자 자신의 아들인 에드워드를 노르망디에서 불러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하르사크누트가 사망한뒤 에드워드가 왕위를 잇는것에 기여하게 되죠. 


에마는 하르사크누트가 죽고 에드워드 "참회왕"이 왕위를 이은후에도 잉글랜드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잉글랜드 내에서 매우 영향력이 컸을 것인데 아들들이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을뿐만 아니라 아들들의 왕위계승을 위해 힘쓴 인물이었기에 더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1052년 사망하죠.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묘사된 에드워드 참회왕



그녀가 죽은후 그녀의 아들인 에드워드에게는 후손이 없었고 잉글랜드 왕위계승문제는 다시 한번 복잡해지게 됩니다. 혈연관계가 없었기에 왕위를 얻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이 나서게 되는데 잉글랜드 내에서는 웨섹스 백작이었던 해롤드 고드윈선을 국왕으로 내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왕위를 주장하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기욤이었죠. 그는 에드워드가 노르망디 궁정에 있을때 왕위를 넘기기로 했던 것을 언급했으며 해롤드 고드윈선이 포로로 잡혔을때도 역시 왕위를 오르도록 도와주겠다는 서약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잉글랜드 계승을 주장하죠. 그리고 선단을 이끌고 잉글랜드로 갔으며 해롤드를 전장에서 살해하고 잉글랜드를 무력으로 장악하므로써 "정복왕"으로써 잉글랜드의 국왕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 잉글랜드 국왕은 이 정복왕 윌리엄의 후손이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