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1) 요크의 앨프기푸 : 애설레드의 왕비

엘아라 2019. 2.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흠 이시리즈도 보니까 거의 다해가는듯하네요.

이제 정녕 프랑스의 왕비들을 해야할 차례인가요 ㅠ.ㅠ

이자보에서 벗어난지 며칠 안됐는데 말입니다.ㅠ.ㅠ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1) 요크의 앨프기푸 : 애설레드의 왕비


요크의 앨프기푸

Ælfgifu of York 

(fl. c. 970 – 1002)


잉글랜드의 국왕 애설레드의 첫번째 아내에 대한 기록은 다른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그다지 많이 없습니다. 특히 애설레드 시절의 혼란한 잉글랜드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것이 더 이해될수 있습니다. 게다가 애설레드의 두번째 아내가 노르망디의 엠마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임을 감안해보면 더할것입니다.


애설레드 언레디

the unready라는 별명은 "느림보"라는 의미보다는 그의 이름에 대한 농담이 섞인 별명으로 혼란했던 그의 통치기에 대한 연대기 저자들의 유머정도로 이해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인 애설레드는 "좋은 조언을 받는"정도 의미라서 댓구로 "나쁜 조언은 받는"정도의 의미의 영국식 고어인 unræd을 쓴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변형되면서 unready로 바뀐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하더라구요.




애설레드의 첫번째 아내에 대해서 초기 기록에는 이름없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12세기 잉글랜드 역사가들은 그녀의 이름이 앨프기푸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몇 기록들에 나오는 그녀의 가족 관계 역시 모호한데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애설레드의 첫번째 아내는 앨프기푸라는 이름으로 요크의 에알도르맨이었던 토레드의 딸인것으로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기록이 거의 없기에 그녀가 언제 결혼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아들들의 나이등으로 추론해볼때 앨프기푸는 적어도 980년대에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으며 그러면 970년대무렵에 태어난것으로 역시 추정할수 있을듯합니다. 앨프기푸와 애설레드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는데 앨프기푸의 아버지였던 토레드는 요크의 에알도르맨으로 매우 강력한 인물로 이쪽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앨프기푸의 아들들에게도 이어져 이들 역시 다른 중요 통치자들의 딸들과 결혼하죠.


앨프기푸는 애설레드와의 사이에서 적어도 여섯아들들을 낳았으며 여러 딸들도 낳은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앨프기푸의 아들들중 일부는 애설레드의 어머니인 앨프스리스에게 보내져서 양육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앨프기푸의 여섯 아들들중에 아버지보다 오래산 아들은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 인근의 에알도르맨들과 결혼시킨 세명의 딸들도 기록에 남아있는데 이것은 바이킹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앨프기푸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는 토레드 역시 바이킹의 칭공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사했거나 아니면 그 상처로 인해 죽었을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결속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

요크의 앨프기푸의 아들


앨프기푸에 대한 동시대 기록은 거의 없으며 아마도 1002년경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