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설인데 모두들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페드루 1세는 딸이 의외로 많군요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6) 브라질의 프란시스카 : 페드루 4세의 딸
브라질의 프란시스카
주앵빌 공비(여공)
Princess Francisca of Brazil (2 August 1824 – 27 March 1898)
Francisca Carolina Joana Carlota Leopoldina Romana Xavier de Paul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de Bragança
딱봐도 느낌오는 빈터할터 그림
인판타 프란시스카는 1824년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1세와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인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페드루 1세는 다른 딸들처럼 프란시스카의 이름 역시 브라질 내의 지명에서 이름을 따온것인데 그녀의 이름은 브라질에서 아마존 강과 더불어 중요한 강으로 여겨지는 상프란시스쿠 강에서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2살때 어머니인 마리아 레오폴지나 황후가 사망했으며 1829년에는 새어머니인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말리가 브라질로 왔지만, 1831년 아버지인 페드루가 퇴위하면서 새어머니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고 프란시스카와 위의 언니들 그리고 남동생이자 황제가 된 페드루 2세만이 브라질에 남게 되죠. 어린 형제자매들은 부모가 없었기에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고 프란시스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두 누나들인 프란시스카와 자누아리아와 함게 있는 브라질의 페드루 2세
1838년 브라질에 한 프랑스 왕족이 방문합니다. 그는 프랑스의국왕이었던 루이 필리프의 아들인 프랑수아 도를레앙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해군으로 복무했었는데 특히 1840년에는 나폴레옹의 유해를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프랑스로 운구할때 이를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이때 프란시스카는 프랑수아와 만났을 것이며 이런 인연은 1843년 프란시스카와 프랑수아의 결혼이 성사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프란시스카는 남동생인 페드루 2세와 언니들 다음으로 브라질의 계승권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리고 프란시스카는 결혼할때 지참금으로 현재 브라질의 조인빌리 Joinville 지역을 가지고 갔기에 그녀의 남편인 프랑수아 도를레앙은 결혼으로 "조인빌리 공Prince of Joinville,"지위를 부여받았으며 이때문에 프란시스카는 조인빌리 공비(여공)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결혼 직후 프란시스카는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왔으며 이때문에 프랑스식으로 둘은 주앵빌 공과 주앵빌 공비(여공)으로 불리게 되죠.
프랑수아 도를레앙
주앵빌 공
프란시스카의 남편
역시나 딱 봐도 느김오는 빈터할터 그림
프랑스 궁정에서 프란시스카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유명하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브라질 출신의 친구들과 함께 지냈는데 바랄 백작부인인 루이사 데 바로스 같은 인물과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48년 프랑스에서 왕정이 무너지고 루이 필리프와 그 가족들은 망명을 해야했었습니다. 프란시스카 역시 프랑스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갔는데, 망명한 직후인 1849년 그녀는 딸을 사산하기도 했었습니다.
프란시스카와 그 가족들은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 전까지 망명생활을 했지만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고 제2제국이 성립하자 프랑스로 돌아올수 있었으며 프란시스카는 프랑스에서 사망했습니다.
나이든 후의 프란시스카
프란시스카와 프랑수아 도를레앙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둘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첫째는 딸인 프랑수아즈 도를레앙으로 그녀는 사촌이었던 샤르트르 공작 로베르트 도를레앙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죽은 뒤 가문의 수장이 된 파리 백작 필리프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와 샤르트르 공작의 아들인 기즈 공작 장은 후에 사촌의 뒤를 이어서 가문의 수장이 되죠.
샤르트르 공작 부부
프란시스카와 프랑수아 도를레앙의 둘째는 아들인 팡티에브르 공작 피에르였습니다. 그는 외할아버지인 페드루 1세의 이름을 딴것으로 그는 아버지처럼 해군으로 복무하고 싶어했었죠. 이것은 그가 외삼촌인 페드루 2세가 딸들의 남편감을 찾을때, 사촌과의 결혼을 거절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는 해군으로 살고 싶었지만 페드루 2세의 딸들은 브라질의 황위계승자들이었으며 이때문에 해군으로써 일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피에르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유부녀와의 사이에 두명의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팡티에브르 공작 피에르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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