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4) 브라질의 자누아리아 : 페드루 4세의 딸

엘아라 2018. 12.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왜 갑자기 브라질이냐면.... 페드루 4세가 브라질 황제가 되면서 브라질의 계승권이 있습니다. 그후에 마리아 2세가 왕위에 오른뒤 다른 자녀들은 포르투갈 지위를 포기한듯하더라구요. 그래서 고민이 되더라구요. 브라질에 넣어야하나 포르투갈 본편에 넣어야하나...(브라질은 번외편으로 할 예정입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포르투갈 인판타이기도 했으니 포르투갈쪽에 넣을까합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4) 브라질의 자누아리아 : 페드루 4세의 딸 




브라질의 자누아리아

Princess Januária of Brazil

(Januária Maria Joana Carlota Leopoldina Cândida Francisca Xavier de Paul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11 March 1822 – 13 March 1901) 



브라질의 자누아리아는 브라질의 황제이자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페드루1세&4세와 그의 첫번째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자누아리아라는 이름은 페드루 1세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딴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위로는 언니인 마리아 다 글로리아가 있었고 아래로는 파울라,프란시스카 그리고 페드루가 있었습니다.



다섯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레오폴지나 황후



자누아리아의 어머니인 마리아 레오폴지나 황후는 자누아리아가 4살때 사망했습니다. 페드루 1세는 곧 재혼하는데 그의 두번째 부인은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였습니다. 자누아리아와 형제자매들은 모두 아멜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은 복잡했으며 결국 페드루 1세는 양위했으며 브라질을 떠냐야했죠. 하지만 자누아리아와 파울라는 브라질의 후계자이기도 했기에 결국 동생인 페드루 2세와 함께 브라질에 남게 됩니다. 자누아리아와 파울라,프란시스카와 페드루 2세는 이때문에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특히 1833년 파울라가 사망하면서 세명의 아이들은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834년에는 아버지인 페드루 역시 사망합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있던 존재였기에 아버지의 죽음에 아주 큰 충격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두 누나인 자누아리아와 프란시스카와 함께 있는 페드루 2세



1835년 자누아리아는 동생인 페드루 2세의 추정 황위계승자로 선출됩니다. 페드루 2세에게 후계자가 생길때까지 그녀가 추정황위계승자가 된것입니다. 그녀의 언니인 마리아 다 글로리아는 포르투갈 여왕이었기에 당연히 계승권을 박탈당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위는 페드루 2세의 아들인 아폰수가 태어나는 1845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자누아리아와 동생인 프란시스카 그리고 페드루 2세의 결혼은 브라질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페드루 2세의 황후감을 찾는 동안 공주들의 신랑감도 함께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누아리아와 페드루 2세는 양시칠리 왕국에서 배우자들을 찾게 됩니다.


양시칠리의 프란체스코 1세의 딸인 테레자와 아들인 아퀼라 백작 루이지는 각각 페드루 1세와 그의 누나인 자누아리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사실은 너무 먼 곳이었기에 배우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결국 친척관계이며 에스파냐와도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는 양시칠리 가문의 공주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1843년 페드루 2세는 양시칠리의 테레자와 결혼햇는데 이때 아마도 자누아리아의 혼담 역시 추진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페드루 2세가 결혼한 다음해인 1844년 자누아리아 역시 루이지와 결혼합니다.



페드루 2세 부부와 자누아리아 부부

1870년대


하지만 루이지와 페드루 2세는 곧 마찰을 빚게 되고 자누아리아와 루이지는 결국 결혼한 그해 브라질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1845년 페드루 2세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자누아리아는 후계자 지위를 상식합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자누아리아와 그녀의 가족들은 여전히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받게 됩니다. 


자누아리아는 남편과 함께 양시칠리로 가서 살았지만 양시칠리에서도 복잡한 정치 관계 때문에 프랑스로 옮겨가야햇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01년 니스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누아리아와 루이지 사이에서는 네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만 두 아들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모두 귀천상혼했다고 합니다. 



두 아들들과 함께 있는 자누아리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