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3) 마리아 2세 : 페드루 4세의 딸(네번째)

엘아라 2018. 12.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3) 마리아 2세 : 페드루 4세의 딸(네번째)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

마리아 다 글로리아

포르투갈의 여왕

Maria II of Portugal

 (4 April 1819 – 15 November 1853) 

 Maria da Glória Joana Carlota Leopoldina da Cruz Francisca Xavier de Paula Isidor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마리아 2세는 통치기간동안 전국에 만연한 콜레라를 퇴치하기 위한 공공 의료사업에 집중했었으며 또 교육수준을 높이는 것에도 신경을 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2세는 결혼 14년간 11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통치기간 내에 거의 임신중이었을 것이며 이때문에 적극적 통치행위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임신중에는 주로 남편인 페르디난트(페르난도)가 통치를 했었다고 합니다.



장남이자 후계자인 페드루를 안고 있는 마리아 2세



마리아 2세는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그녀의 출산은 늘 힘든것이었다고 합니다. 18살에 첫아이를 낳았지만 첫아이를 낳을때부터 매우 힘들어했으며 이후의 아이들 역시 낳는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셋째아이를 낳을때는 진통을 32시간이나했다고 합니다. 또 25살에 낳은 다섯째 아이를 낳을때는 더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덟번째 아이를 낳았을때 아이는 보랏빛이었으며 호흡도 매우 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를 지속적으로 낳으면서 마리아 2세는 건강에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고통스러운 난산으로 인한 문제 뿐만 아니라 잦은 임신으로 인한 비만과 심장의 이상문제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계속해서 아이를 낳을 경우 건강에 매우 치명적이 될것이며 그녀의 목숨마저 장담할수 없을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2세는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으며 조언하는 의사들에게 "내가 죽는다면 내 지위에서 죽은것이오"라고 말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2세



결국 1853년 11월 13시간의 진통끝에 11번째 아들인 에우제니오를 낳습니다만 아이는 사산된채 태어났으며 마리아 2세도 34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마리아 2세가 죽은뒤 왕위는 그녀의 장남인 페드루에게 물려졌으며, 그녀의 남편인 페르난도는 정치적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퇴위했고 아들의 섭정으로 있다가 아들이 성인이 되자  아들의 조언자로 지냈다고 합니다.


마리아 2세는 살아있는 동안 매우 좋은 어머니였으며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했었던 인물로 기억된다고 합니다.



마리아 2세


마리아 2세는 페르난도 2세와의 사이에서 모두 열한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그중 일곱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장남인 페드루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페드루 5세로 즉위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둘째아들인 루이스는 형이 죽은뒤 국왕 루이스 1세로 즉위합니다. 셋째아들인 주앙 역시 미혼으로 19살의 나이로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넷째아들인 페르난도 역시 콜레라로 15살에 사망합니다. 다섯째아들인 아우구스토는 평생 미혼으로 지냈습니다. 첫째딸인 마리아 안나는 작센의 국왕 게오르그와 결혼했었습니다만 남편이 국왕이 되기전 사망해서 왕비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딸인 안토니아는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수장이었던 레오폴트와 결혼했고 그녀의 아들인 페르디난트는 숙부인 루마니아의 국왕 카롤 1세의 뒤를 이어서 루마니아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두아들인 루이스와 아우구스토 그리고 며느리인 마리아 피아 디 사보이아와 함께 있는 페르디난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