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8) 브라질의 마리아 아멜리아 : 페드루 4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19. 2.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8) 브라질의 마리아 아멜리아 : 페드루 4세의 딸 (두번째)




브라질의 마리아 아멜리아

Princess Maria Amélia of Brazil 

(1 December 1831 – 4 February 1853)

Maria Amélia Augusta Eugênia Josefina Luísa Teodolinda Elói Francisco Xavier de Paula Gabriela Rafaela Gonzaga  de Bragança




1840년대 마리아 아멜리아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가 있는 뮌헨에 가게 됩니다. 아멜리아 황후는 딸의 교육을 위해서 뮌헨으로 데리고 간것이었죠. 뮌헨에서 마리아 아멜리아는 수사법,역사,철학,지리학.독일 문학,수학,물리학등을 배웠으며 또 포르투갈어와 영어,프랑스어,독일어를 읽고 쓰는 법도 배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배우는 그림이나 음악 수업역시 배웠는데 마리아 아멜리아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으며 피아노도 매우 잘쳤다고 합니다. 


매우 교육을 잘받았고 똑똑했던 마리아 아멜리아는 불같은 성격에 살짝 꼬인 모습도 보여줬는데 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녀를 가르치던 선생중 한명은 마리아 아멜리아가 법학공부를 해야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멜리아의 그림


마리아 아멜리아는 어린시절 사망한 아버지 페드루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녀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늘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는 했었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모두가 가엾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아버지를 그리워했겠지만 그 그리움으로 이익을 얻을수도 있었기에 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을 듯합니다.


1850년 말 아멜리아는 딸을 데리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1852년 초 마리아 아멜리아는 한 친척 남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동생이자 해군이었던 막시밀리안 대공으로 그의 배가 포르투갈에 정박해있는 동안 친척이었던 마리아 아멜리아를 만나러 온것이었죠. 마리아 아멜리아는 이미 뮌헨에서 그를 본적이 있었지만 매우 어렸을때 일이었죠. 그러나 다시 만나게 된것은 대부분 혼담을 위한 것이었는데 모두가 즐겁게도 막시밀리안과 마리아 아멜리아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죠.

둘은 친척관계로 마리아 아멜리아의 어머니인 아멜리아는 막시밀리안 대공의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조카였습니다. 또 페드루 1세의 첫번째 아내는 막시밀리안의 고모이기도 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인 오스트리아의 대공과 포르투갈 여왕의 동생이자 브라질 황제의 동생은 매우 잘어울리는 사이였고 둘은 신분으로도 잘 어울렸으며 또 마리아 아멜리아는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막시밀리안은 더운더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은 곧 약혼하기로 결정하죠.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

후에 멕시코의 황제


그러나 이 약혼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는데 마리아 아멜리아가 일찍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1852년 2월 마리아 아멜리아는 성홍열에 걸립니다. 그녀는 병이 낫지 않았고 점차 다른 합병증세까지 보이게 되죠. 결국 8월에  요양을 위해서 마데이라 섬으로 가게됩니다. 그리고 섬에 도착한뒤 마리아 아멜리아의 병세는 호전되는듯보였죠.하지만 11월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마리아 아멜리아의 병세는 악화됩니다. 그리고 1853년이 되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고 결국 2월에 사망합니다.



마리아 아멜리아의 죽음


그녀의 죽음은 주변 인물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인 아멜리아 황후는 가장 큰 충격을 받았으며 늘 딸을 기억했고 딸의 기일에는 그녀의 묘를 방문하고는 했었으며 딸의 이름을 딴 병원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동생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지만 늘 편지를 주고 받았던 오빠 페드루 2세 역시 오래도록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했었다고 합니다. 또 약혼자였던 막시밀리안 대공 역시 마리아 아멜리아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며 전 약혼녀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나 그녀의 이름을 딴 병원등을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안이 멕시코에서 죽기전 목에 걸고 있던 성모마리아의 메달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 메달은 사실 마리아 아멜리아가 그에게 선물로 줬던 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아멜리아가 죽은 뒤 아멜리아 황후의 개인 재산은 형제 자매들이 상속받는데 그녀의 보석 상당수는 스웨덴 왕비가 된 언니 조제핀(요세피나)에게 물려졌으며 이 보석들은 현재도 스웨덴 왕가의 소유로 남아있습니다.



브라간사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쓰고 있는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저 티아라의 이름이 브라간사 티아라인것은 아멜리아 황후가 스웨덴에 있던 언니에게 유산으로 남긴것으로 후에 스웨덴 왕가의 중요한 티아라중 하나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