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2)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1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18. 12.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2)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1세의 딸(세번째) 



러시아의 마리아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로이히텐베르크 공작부인

Grand Duchess Maria Nikolaievna of Russia 

(Мария Николаевна

(18 August 1819 – 21 February 1876) 

딱 봐도 느낌 오는 빈터할터 그림



니콜라이 1세는 사랑하는 딸을 결혼시켜서 러시아에 머물게 하면서 그녀에게 궁전을 지어주기로 합니다. 특히 겨울 궁전 근처에 지어서 니콜라이 1세가 사랑하는 딸을 자주 만날수 있게 했습니다. 이 궁전은 1844년 완성되었으며 마리야의 이름을 따서 "마린스키 궁전"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마리야는 자신의 궁전을 매우 아름답게 꾸미는데 이때문에 그녀의 궁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알려지게 됩니다. 물론 마린스키 궁전이 완성되기 전에는 근처의 다른 궁전에서 지냈었다고 합니다. 또 외손자들을 위해서 아이들이 러시아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로마노프스키 공/로마노프스카야 공녀 칭호를 쓰도록 허락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마리야와 그녀의 남편인 막시밀리안은 예술과 과학등에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막시밀리안은 러시아군인으로 일했었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광산 기술에 대해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는 매우 전문적으로 공부했었고 니콜라이 1세는 사위를 광산부서의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마리야는 이런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야와 막시밀리안의 사이는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부부 사이는 멀어졌으며 마리야는 남편과의 불화를 활발한 자선사업과 더불어 연애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안과 마리야의 사이에서 일곱아이가 태어나는데 특히 1847년경부터 막시밀리안의 건강이 매우 나빴기에 1847년부터 태어난 마리야의 세 아이는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 마리야의 연인의 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특히 막내인 게오르기는 그녀의 연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막시밀리안의 건강은 나빴으며 여러곳에 요양을 다녀야했었는데 결국 1852년 사망하게 됩니다. 



3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 드 보아르네



남편이 죽은뒤 마리야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그리고리 스트로가노프 백작과 1854년 비밀리에 재혼합니다. 이 결혼이 비밀리에 붙여진 이유는 마리야의 아버지인 황제 니콜라이 1세가 마리야의 결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딸의 행동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고서는 마리야는 수녀원으로 가라고 했으며 백작은 코카서스로 내쫓아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제는 오래살지 못했고, 마리야의 온화한 오빠인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하게 되죠. 



그리고리 스트로가노프 백작

마리야의 두번째 남편



마리야는 오빠인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한후인 1856년 백작과 공식적으로 결혼했고 오빠에게 결혼을 허락해서 러시아에 살수 있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2세는 이를 허락하지 않죠. 그는 마리야에게 계속해서 외국에 산다면 백작과의 결혼을 못본척해주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마리야는 러시아에서 살수 없었고 두번째 결혼을 허락받을수 없었기에 첫번재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떨어져지내야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러시아 황실 가족이었기에 황제의 명으로 겨울 궁전에서 어머니 없이 지내야했었습니다.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마리야는 두번째 남편과 제네바와 로마로 갔었으며 후에는 피렌체로 갑니다. 마리야는 두번째 남편과의 결혼에서 행복을 얻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피렌체의 집을 꾸미는데 열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야는 점차 아팠으며 나중에는 너무나 말라버려서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결국 러시아로 돌아왔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56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마리야는 두번의 결혼에서 아홉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그중 일곱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첫째인 마리야는 바덴 대공의아들과 결혼했으며 후에 바덴대공가문의 수장이자 독일의 빌헬름 2세의 마지막 수상으로 그를 실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바덴의 막시밀리안(막스)가 그녀의 아들이었습니다.

둘째는 니콜라이로 그는 귀천상혼을 했었습니다. 셋째는 예브게니아는 올덴부르크 공작의 아들인 표트르 게오르기예비치와 결혼했습니다. 예브게니아의 남편은 파벨 1세의 딸인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의 손자였습니다. 이때문에 러시아 황실 가족의 친척으로 러시아에서 살아가고 있었죠. 예브게니아의 아들중 한명은 알렉산드르 3세의 딸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습니다. 다섯째인 예브게니는 역시 귀천상혼을 햇었습니다. 여섯째인 세르게이는 터키-러시아 전쟁에서 미혼으로 사망했습니다. 여섯째이자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막내인 게오르기는 형들의 뒤를 이어서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마리야의 두번째 결혼에서는 딸인 옐레나만이 성인으로 성장했고 러시아 군인과 결혼했었습니다.



마리야 니콜라예브나의 자녀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