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8)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 니콜라이 1세의 황후(세번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Alexandra Feodorovna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Алекса́ндра Фёдоровна)
(13 July 1798 – 1 November 1860),
알렉산드라는 시아주버니인 알렉산드르 1세의 언질을 받았었기에 남편이 언젠가 황제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 상황은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오게 됩니다. 1건강하던 황제는 연약한 황후와 함께 흑해 연안으로 요양을 갔다가 1825년 11월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황제가 죽은 뒤 유언장에는 바로 밑의 동생인 콘스탄틴 대공이 아니라 알렉산드라의 남편인 니콜라이가 제위를 이으라고 되어있었죠. 하지만 니콜라이는 귀족들에게 인기가 없었으며, 귀족들의 호감이나 제위 계승 순서에서나 모두 콘스탄틴 대공이 우선이었죠. 이에 니콜라이 주변에 있던 조언자들은 반란을 막기 위해서 일단 콘스탄틴 대공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정작 폴란드에 있던 콘스탄틴 대공은 동생인 니콜라이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황제로 인정을 했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은 결국 일명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이라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자유주의자였던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죽고 이후 보수주의자였던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할 무렵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상황으로 12월에 일어났기에 데카브리스트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알렉산드라의 남편
니콜라이 1세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군인들과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고 새롭게 황제가 된 니콜라이 1세는 처음에는 협상을 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거부했고 심지어 협상을 진행하러 간 사람이 살해되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은 알렉산드라나 다른 황족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렸을 것이며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강력한 보수주의자였던 니콜라이 1세는 이런 일이 일어나자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대포를 쏘면서 강경진압했으며 이후 반란에 관계된 사람들 하나하나를 처형하므로써 러시아에서 강력한 황권을 구축했었습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반란
역사화
비록 니콜라이 1세는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치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라는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직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남편인 니콜라이 1세가 바라는 일이기도 햇었습니다. 그리고 부부는 매우 가정적으로 매우 행복했었는데 니콜라이 1세는 아내에게 매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837년 겨울궁전에 불이 났을때 황제는 자신의 참모에게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단지 알렉산드라가 약혼때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든 상자만은 꼭 구하라고 명령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1세
하지만 결혼 생황에서 알렉산드라가 다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애정이 있었지만 알렉산드라는 매우 허약했으며 이어서 여덟번 임신해서 일곱명의 아이를 낳은것은 그녀의 건강을 더욱더 악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832년 알렉산드라가 막내아들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낳은뒤, 의사는 알렉산드라가 심장마비를 일으킬것을 우려해서 부부사이에 잠자리를 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알렉산드라가 더이상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햇었습니다. 이에 황제는 알렉산드라의 시녀중 한명이었던 바르바라 넬리도바를 정부로 선택합니다. (바르바라의 고모인 예카테리나 넬리도바는 니콜라이 1세의 아버지였던 파벨 1세의 정부이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건강때문이고 남편이 여전히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솔직히 대놓고 정부를 들이는 알렉산드라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니콜라이 1세는 궁정 여성들과 가벼운 연애관계에 있긴 했었지만 이전까지는 공식 정부는 들이지 않았었죠. 하지만 결국 알렉산드라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으며 남편의 정부가 된 바르바라 넬리도바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의 건강은 매우 나빴으며 자주 위독한 상황이 되었지만 늘 건강을 회복하고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녀의 삶을 피폐하게 했는데 자주 신경질적이 되었으며 나이보다 훨씬더 늙어보이게 만들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늘 참조하는 에드바르 라진스키의 알렉산드르 2세 전기(..제목이 갑자기 기억이..ㅠ.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90)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니콜라이 1세의 딸(첫번째) (0) | 2018.12.05 |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9)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 니콜라이 1세의 황후(네번째) (0) | 2018.11.28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7)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 니콜라이 1세의 황후(두번째) (0) | 2018.11.14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6)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 니콜라이 1세의 황후(첫번째) (0) | 2018.11.07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5)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나 : 파벨 1세의 손녀 (0) | 2018.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