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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06) 루드비히 폰 발모덴-김보른 : 조지 2세의 손자

엘아라 2018. 11.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그냥 자료 있는 사람 하렵니다.

요즘 의욕상실인지 글이 잘 안써집니다..흑


정부들과 그 후손들...(206) 루드비히 폰 발모덴-김보른 : 조지 2세의 손자



루드비히 폰 발모덴

Ludwig Georg Thedel, Graf von Wallmoden 

(6 February 1769 – 22 March 1862)


루드비히 게오르그 테델 폰 발모덴-김보른은 조지 2세의 사생아 아들인 요한 루드비히 폰 발모덴-김보른과 그의 첫번째 아내인 샤를로테 크리스틴 폰 반겐하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빈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의 아버지는 빈 주재 외교관으로 빈에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 루드비히 폰 발모덴-김보른

루드비히의 아버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인의 길을 간 루드비히는 처음에는 하노버 군에 들어갔으나 이후 프로이센 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당시 프로이센군은 프리드리히 대왕이후 유럽의 많은 군인들이 선망하던 곳중 하나였고 아마도 루드비히 역시 아마 프로이센군에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문의 영향이 있는 하노버 군보다 프로이센 군에서 훨씬 더 실전경험을 쌓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 프랑스 혁명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는 프로이센군으로 전쟁에 참전합니다. 특히 1793년의 카이저슬라우테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서 프리드리히대왕이 만든 프로이센 최고 등급의 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를 수여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총검에 가슴을 찔리는 부상을 입었었다고 합니다.



푸르 르 메리트


1795년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자 그는 오스트리아 군으로 갔고 후사르 장교로 1800년에는 대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혈연 관계를 이용해서 오스트리아와 영국 사이의 외교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그람 전투에서 후사르 장군으로 참전해서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비록 바그람 전투 자체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 패배해지만 그는 매우 큰 활약을 햇고 후에 오스트리아 최고 훈장중 하나인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을 받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평화조약을 체결한후 그는 프라하로 가서 잠시 살았습니다.


하지만 1812년 루드비히는 황제의 허가를 얻어서 나폴레옹에 대적하는 영국군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러시아 군으로 가는데, 러시아가 반 나폴레옹 동맹에 참전하면서 아마도 영국과 독일에 동시에 연줄이 있는 루드비히가 러시아로 갔고 나폴레옹에 대적하기 위한 부대중 하나인 러시아-독일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다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후 그과 그의 부대는 1814년 파리에 입성했었습니다. 이후 1815년 루드비히는 다시 오스트리아 군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오스트리아 군으로 참전합니다. 특히 나폴리 탈환을 위한 오스트리아군의 총 사령관이 되었으며 이후 오래도록 시칠리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루드비히


1848년까지도 군에 있었지만 이후 은퇴해서 빈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94살인 1862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