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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02)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 조지 1세의 정부(?)

엘아라 2018. 10. 2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브리튼 왕국으로 넘어왔습니다. -0-;;;;

하노버 가문은 왕자들이 정부들이 많은데...훔....


사실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정부라기 보다는 국왕의 귀천상혼한 아내에 더 가깝거든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서 칭호도 받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국은 귀천상혼제도가 없어서 정식부인이면 Queen이 되어야했는데 독일식으로는 그게 용납이 되지 않으니 그냥 독일식으로는 귀천상혼으로 남았고 영국에서는 정부처럼 여겨졌다죠. -0-;;;어쨌든 그래도 일단 여기에 적어볼까합니다. 사실 까먹고 귀천상혼에 안 넣었어요 -0-;;;;;;;


정부들과 그 후손들...(202)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 조지 1세의 정부(?)



에렌가르트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켄달 여공작, 먼스터 여공작

에베른슈타인 여공

Ehrengard Melusine von der Schulenburg,

 Duchess of Kendal,

 Duchess of Munster 

(25 December 1667 – 10 May 1743) 


에렌가르트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조지 1세의 오랜 정부였던 여성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폰 데어 슐렌부르크 남작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구정 조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오빠인 요한 마티아스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작센의 장군으로 후에 빈에서 은퇴했는데 예술작품 수집가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멜루지네라는 이름은 그 바다에서 선원들을 유혹해서 죽인다는 멜루신 전설의 그 멜루신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요한 마티아스 데어 슐렌부르크

멜루지네의 오빠


1690년 멜루지네는 하노버의 선제후비였던 조피 폰 데어 팔츠(조지 1세의 어머니이자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의 시녀가 됩니다. 그리고 곧 선제후비의 아들이자 선제후의 후계자였던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정부가 되죠. 당시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사촌이었던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와 결혼한 상황이었습니다만 부부사이는 매우 나빴으며 게오르그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햇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선제후 가문 사람들은 게오르그가 아내에게 과도한 폭력을 쓰느니 차라리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고 그래서 정부를 들이는것을 은근히 권했을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여자를 정부로 들인것에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더욱더 화를 냈으며 결국 부부사이는 거의 끝장나게 됩니다. 그리고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하려다가 발각되게 됩니다. 결국 1694년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정식으로 헤어지게 됩니다만 가문의 재산이 다른 집안으로 넘어갈것을 우려해서 조피 도로테아의 재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조피 도로테아는 조지 1세의 백부의 딸로 그녀는 외동딸이었기에 영지와 그에딸린 재산외에 재산은 상속받을수 있었는데 이것이 상당했었습니다. 그래서 가문에서는 조지 1세와 그녀를 결혼시킨것이었습니다.)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조지 1세의 부인



아내와 이혼한뒤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결혼하지 않고 멜루지네와 함께 지냈으며 이후 그는 1698년 하노버의 선제후가 되었고 1714년에는 영국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멜루지네는 조지 1세와 함께 영국에 왔는데 그녀는 영국에서 누구보다더 더 "왕비"같은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조지 1세는 멜루지네에게 1718년에는 아일랜드 작위로 먼스터 여공작등의 지위를 부여했으며 1719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작위로 켄달 여공작 등의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1723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 에베른슈타인 여공 지위까지 얻게 됩니다. 이런 일련 작업은 귀천상혼이 없던 영국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국왕의 정식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지만 귀천상혼제도가 있던 독일에서는 국왕의 귀천상혼한 아내라고 볼수 있을 지위였었습니다.



조지 1세


멜루지네는 영국에서 높은 지위를 얻었기에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가끔 국왕의 적들에게 공격 대상이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우스씨컴퍼니 버블사태였습니다. 대충 주식 버블사태로 지급능력이 부족한 사우스씨컴퍼니의 주식이 과도하게 부풀려져서 거래하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파산에 이른 상황이었죠. 이때 멜루지네가 여기 관여해서 엄청나게 이익을 봤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만 정작 그녀도 손해봤었다고 합니다. 

또 멜루지네는 정치적으로도 조지 1세에게 매우 영향력이 컸었다고 합니다.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멜루지네는 영국에서 조지 1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모두 부모의 곁에서 성장한것이 아니라 멜루지네의 자매들의 자녀로 선언되었고 키워졌습니다. 위의 두딸인 안나 루이제 조피 폰 데어 슐렌부르크와 페트로닐라 멜루지나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언니인 거투루트 부부의 딸로 키워졌는데 거투르트는 같은 집안 사람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데어 슐렌부르크와 결혼했기에 성이 같았습니다. 반면 막내딸인 마르가레테 거트루트 폰 오에인하우젠은 멜루지네의 여동생인 조피 율리아네의 딸로 키워지는데 조피 율리아네는 하노버 선제후의 조신이었던 라벤 크리스토프 폰 오에인하우젠과 결혼했기에 막내딸의 성은 오에인하우젠이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딸인 안나 루이제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독일 귀족과 결혼했었지만 이혼했으며 172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 될리츠 여백작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둘째딸인 페트로닐라 멜루지나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1722년 발싱햄 여백작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1733년 4대 체스터필드 백작이자 휘그당을 이끌던 인물이었던 필립 스탠호프와 결혼했습니다.



4대 체스터필드 백작

필립 스탠호프


막내딸인 마르가레테 거트루트 폰 오에인하우젠은 샤움부르크-리페의 백작인 알브레히트 볼프강과 결혼했습니다. 샤움부르크-리페가문은 작지만 통치가문이었기에 마르가레테 거트루트가 결혼한것을 보면 멜루지네와 조지 1세의 사이는 귀천상혼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것입니다. 멜루지네가 이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 지위를 부여받았기에 그녀의 딸도 통치가문이라도 샤움부르크-리페 같은 작은 통치 가문으로 시집갈수 있었던 것인것이죠.



샤움부르크-리페의 알브레히트 볼프강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