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1)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 파벨 1세의 며느리 (두번째)

엘아라 2018. 10.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1)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 파벨 1세의 며느리 (두번째)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러시아의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

Princess Charlotte of Württemberg 

Grand Duchess Elena Pavlovna

(9 January 1807 – 2 February 1873)


옐레나 대공비는 미하일 대공과 결혼해서 미하일 대공에게 주어진 궁전이었던 미하일로프스크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죽은뒤 황태후로부터 미하일 대공은 파블로브스크 궁전을 물려받았기에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미하일로프스크 궁전


미하일 대공과 옐레나 대공비의 결혼생활을 행복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미하일 대공이 아내에게 그리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로마노프 가문의 남자들처럼 군대에만 열정적이었는데 이것은 지적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있던 엘레나 대공비와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미하일 대공은 독일 왕녀들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둘째형인 콘스탄틴대공의 영향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콘스탄틴 대공은 아내였던 안나 표도로브나와의 관계가 나빴고 이런 상황은 그가 독일 왕녀들에 대해서 나쁜 관점을 가지게 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내동생인 미하일 대공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콘스탄틴 대공을 좋아했기에 이런 형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하일 대공과 엘레나 대공비


미하일 대공은 원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으며 가족내에서도 친밀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황제인 니콜라이 1세에게 매우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었으며 다른 형인 콘스탄틴 대공과도 친밀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매우 엄격한 인물이었으며, 다른것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결국 아내와 맞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 아내에게 무관심한 모습에 다른 가족들은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미하일 대공은 옐레나 대공비의 할아버지이자 미하일 대공의 외삼촌이었던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1세처럼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냥 아내와 맞지 않는 사이인것을 알고서도 그저 의무로 받아들였던듯합니다.



옐레나 대공비


대공부부 사이가 더 차가워진것은 아마도 대공 부부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미하일 대공은 군대에 열성적이었기에 당연히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대공 부부사이에서는 다섯 딸만 태어났고 이런 상황은 아마도 아이가 태어날때마다 미하일 대공의 실망감은 점차 더 커져갔을 것이며 당대에는 이런 상황에서 아내들이 더 죄책감을 많이 가졌을 것입니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알려진 니콜라이 2세도 넷째딸인 아나스타샤가 태어났을때 실망감으로 몇시간동안이나 산책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미하일 대공과 옐레나 대공비 사이에서는 다섯딸이 태어났지만 위의 세딸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미하일 대공의 세 딸들


대공 부부는 아마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서 함께 살아야했던 많은 왕족 부부들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하일 대공은 1849년 51살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옐레나 대공비는 42살의 나이로 과부가 됩니다.



미하일 대공

...나이든 모습이 니콜라이 1세랑 어찌나 비슷한지..=-=


남편과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옐레나 대공비는 남편을 잃고 크게 슬퍼하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과부로 살았지만 남편과 함께 살때보다 훨씬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더 유명해지고 확고해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