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순서대로 하면 니콜라이 1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황후를 해야하는데 어짜피 미하일 대공은 아들이 없어서 분가를 형성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미하일 대공의 부인인 엘레나 대공비와 그 딸들을 하고 난뒤에 니콜라이 1세의 황후와 그 가족들을 해볼까합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80)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 파벨 1세의 며느리(첫번째)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러시아의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
Princess Charlotte of Württemberg
Grand Duchess Elena Pavlovna,
(9 January 1807 – 2 February 1873)
1824년
후에 파벨 1세의 막내아들인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해서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라고 불리게 되는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는 뷔르템베르크의 파울과 그의 아내인 작센-힐데부르크하우젠의 샤를로테의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뷔르템베르크의 파울은 뷔르템베르크의 첫번째 국왕이 되는 프리드리히 1세와 그의 첫번째 아내였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아우구스테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의 고모가 바로 파벨 1세의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였습니다. 그는 부모가 러시아 궁정에 머물고 있을때 러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만.그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별거를 해서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따라 뷔르템르크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러시아에 머물렀고 거기서 사망했었습니다.
뷔르템베르크의 파울
샤를로테의 아버지
그녀의 어머니인 작센-힐데부르크하우젠의 샤를로테는 작센-힐데부르크하우젠 공작이자 후에 작센-알텐부르크 공작이 되는 프리드리히와 그의 부인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와 두 여동생들은 매우 아름다운 여성들로 알려져있었는데 여동생인 테레제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와 결혼했고 루이제는 나사우의 공작 빌헬름과 결혼했었고 그녀의 아들인 아돌프는 룩셈부르크의 대공이 되었고 후에 샤를로테의 딸과 결혼했었습니다.
작센=힐데부르크하우젠의 샤를로테
샤를로테의 어머니
샤를로테의 부모는 다섯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네명의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중 장녀가 샤를로테였으며 둘째는 아들인 프리드리히로 프리드리히의 아들이 뷔르템베르크의 마지막 국왕인 빌헬름 2세가 됩니다. 넷째는 파울린으로 그녀는 이모부였던 나사우의 공작 빌헬름과 결혼했고 그녀의 딸인 나사우의 소피아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뷔르템베르크의 파울린, 나사우 공작부인
샤를로테의 여동생
샤를로테의 부모는 서로 맞지 않는 사이였기에 매우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샤를로테의 아버지는 정부들이 있었고 이런 상황을 샤를로테의 어머니는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다섯아이가 태어났지만 둘은 이혼하길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둘은 별거에 돌입하게 됩니다. 샤를로테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뷔르템베르크의 수도인 슈트트가르트에 머물렀으며 샤를로테의 아버지는 두 딸을 데리고 파리로 가서 지냈다고 합니다. 샤를로테의 아버지는 여기서 정부와 함께 지냈었습니다.
파리에서 샤를로테는 왕족이라기 보다는 중산층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왕족이라는 지위를 매우 답답하게 여겼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안하게 (한마디로 말해서 왕족으로써의 의무를 안해도 되는) 삶을 살고 싶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러나 샤를로테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켰으며 그녀들은 파리에서 지식인들과 교류를 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후에 샤를로테와 파울린은 매우 지적인 여성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샤를로테의 운명은 매우 빨리 결정되게 됩니다. 1822년 샤를로테는 오촌이었던 러시아의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과 약혼을 하게 됩니다. 미하일 대공은 아버지의 사촌으로 아마도 이것은 미하일 대공의 어머니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자신의 친정과 러시아와의 유대를 어느정도 강화시키고 싶어했던것과 연결이 되길 원했기때문일것입니다. 당시 24살의 미하일 대공은 겨우 15살인 샤를로테를 만나러 슈트트가르트로 왔었다고 합니다. 샤를로테는 매우 지적이었으며 예의발랐고 15살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에 아름답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샤를로테에 미하일 대공은 매우 인상을 깊이 받았었다고 합니다만 그는 이 결혼에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미하일 대공은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특히 어머니가 외가쪽 친척과 결혼하라는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슈트트가르트에 왔고 샤를로테가 적당해보였기에 그냥 결혼을 결정했던것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
파벨 1세의 아들
샤를로테의 남편
그리고 1823년 갓 16살이 된 샤를로테는 러시아로 가서 약혼자였던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합니다. 결혼전 그녀는 관례대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개종하면서 옐레나 파블로브나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파울이었기에 부명이 파블로브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샤를로테는 러시아에서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옐레나 대공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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